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年賀狀의 시초



이규태 코너 (1991.1.4.).

0749 年賀狀

기원전 2000년 漢高祖가 長安의 長樂宮을 낙성시켰을 때 일이다. 때마침 정월 초하루인지라 문무백관이 궁전 앞에 東西로 줄지어 서서 새 宮殿들이를 하는 황제를 기다리고 있었다. 황제 劉邦이 탄 연(輦)이 도착하자 문무백관이 앞다투어 장수(長壽)를 비는 만세(萬歲)를 외치고 신분 순으로 앞으로 나아가 덕담(德談)을 올렸다. 대단한 열기였던지 프롤레타리아 유목민 출신인 황제는 이 式典을 꾸민 유학자 숙손통(叔孫通)에게 이렇게 말했다. 『황제란 것이 이렇게 좋은 것인지 오늘에야 알았다』고.

이 궁(宮)들이에 맞붙여 새해맞이의 「拜年」을 정례화했고, 이것이 궁전뿐 아니라 조야에 번져 歲拜의 기원이 됐다 한다.

한데 明祖에 들어오면서 이 세배가 자꾸만 번잡해져 설날 전야부터 천지신명에게 절하고 조상에게 절하고 상전-일가친척 어른-동료들을 찾아다니며 절을 하다 보니 보름이 지나도 세배를 못 마치는 형편이 되었다.

그래서 원거리에 사는 사람이나 친소(親疏)의 차이에 명함으로 세배를 때우는 습속이 생겼다. 현재 남아있는 年賀 명함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 11세기 후반 北宋의 학자 진관(秦觀)의 것이다,

당시 양식을 보면 「경하(敬賀)」라 쓰고 줄을 바꾸어 「아무개 존형(尊兄)」, 다시 줄을 바꾸어 큰 글씨로 「정단(正旦)」, 줄을 바꾸어 보낸 이의 이름 밑에 「手狀」이라 쓰고 있다. 이것이 年賀狀의 시초인 것이다. 연초가 되면 문기둥에 接福이라 쓴 붉은 종이봉투를 달아놓고 연하장을 투함케 했다. 이 연하장을 담아 갖고 다니는 비단상자를 배합(拜盒)이라 하는데 은실-금실로 꾸며 종에게 들려 한 바퀴 돌곤 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세함(歲銜)이라는 명함 세배가 있었다. 각 관아(官衙)나 영문(營門)의 아랫사람들은 상전이나 선임자들의 집에 세배(歲拜)를 가는데 문전에 놓아둔 칠을 한 분에 자신의 이름을 적은 명함을 놓아두고 돌아 다니는데 이를 세함이라 했다.

問安婢라 하여 예쁜 계집종을 골라 곱게 단장시켜 대신 세배를 드리게 하거나 연하 명함을 돌리기도 했다. 사랑 방문을 비스듬히 열어놓고 뉘 문안비가 더 예쁘냐 숨어보는 옛 詩가 남아있기도 하다.

이처럼 옛날 연하장은 피와 정이 통한 연하장이었다. 그래서 소식(蘇軾)이 「자네 하자(賀刺=연하장)를 들고보니/불담은 옥로(玉爐)처럼 따습고 무겁네」하고 읊을 수가 있었다. 손수 먹을 갈아 손수 글을 쓰고 손수 돌아다니며 투함을 하거나 예쁜 문안비로 하여금 돌렸으니 말이다. 지금 그동안 쌓인 연하장을 뜯어 보고 있다. 타이핑된 봉서 속에 인쇄된 그림에 인쇄된 글씨에 인쇄된 서명의 연하장을 들고 보니 옥로는 웬말이냐. 냉돌같이 차고 마른 풀잎처럼 가엾기만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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