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인생 산 어른들은 안다, 성공의 열망이 헛되다는 것을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9/04/20 15:04
[더,오래] 한순의 인생후반 필독서(16)
도서출판 나무생각 창업과 함께 꿈꾼 모습이 있다. 나무생각은 창업 초기에 실버와 고령화에 대한 책을 우리 사회에 대한 의무로 생각하고 여러 가지 제안의 성격을 띤 책을 출간했다. 우선 우리 사회의 고령화 현상이 심각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현상 제시와 대안들을 차례로 출간했다.
창업 초기, 실버와 고령화에 대한 책을 출간했다. [사진 나무생각]
출간 초기에 발행했던 『고령사회 2018 다가올 미래에 대비하라』, 『가족, 부활인가 몰락인가』, 『여성 학교』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현실로 벌어지고 있다. 고령화는 지속되고, 가족의 형태는 기존의 사고를 넘어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생명을 잉태하는 여성의 인권과 권리가 다양한 논의와 함께 진화하고 있다.
고령화와 실버, 그리고 여성
사회 현상의 진화와 별개로 나 개인적인 꿈이 있었다. 나이 들어가는 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는 삶의 지혜와 혜안, 통찰을 엿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각계각층에서 일가를 이룬 분이나 삶을 아름답게 살아내신 분을 찾아가 그들의 지혜에 기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것은 아무리 넘어서려고 해도 세월과 연륜을 통과하지 않고는 볼 수 없는 세계였기에 흠모의 마음은 깊었다. 어쩌면 모자란 내가 그들의 경험을 통해 시행착오를 좀 더 줄여보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고령사회와 실버에 관한 책을 만들면서 나는 가끔 상상에 빠지곤 했다. 나이 드신 진정한 어른을 찾아가 조곤조곤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정리하여 한 권의 책으로 내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고령화와 실버에 관한 책을 만드는 동안 한 채 있던 아파트의 대출은 늘어갔고, 어느 정도 체계를 잡았을 때는 아파트를 팔아야 했다. 그래서 인터뷰에 대한 꿈은 스멀스멀 잊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내가 꿈꾸었던 책이 눈앞에 있었다. 이 책의 저자 김지수는 패션지 마리끌레르, 보그 에디터를 거쳐 현재 조선일보 디지털 편집국에서 문화부장을 맡고 있다. 작가의 말에는 잘나갔던 시절에 대한 성찰부터 그려져 있다.
내가 꿈꾸었던 책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 [사진 한순]
“당대의 유명인사를 스튜디오로 불러 사진 촬영과 인터뷰를 진행하는 나는 실제와 환각 사이의 어디쯤에 있었다. (중략) 고백건대 그때 나는 기고만장했고 나의 삶과 글에는 얼마간 거품이 끼어 있었다.”
“1년여의 세월은 과도하게 부풀려진 내 자아의 조정기였다. 그 시기에 나는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고 대인기피 증세에 시달렸으며 존재와 관계에 낀 거품이 얼마나 쉽게 꺼질 수 있는가를 체험했다. 과정은 혹독했지만 바닥을 치고 나면 자기가 어디에 발 딛고 섰는지 정확하게 알게 된다.”
저자는 ‘그 많던 어른들이 어디로 갔을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허둥대는 손을 잡아줄 어른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저자가 새로운 직장으로 출근하면서 ‘거대한 자가 에너지로 반짝이는, 사람이라는 행성을 깊이 탐구해 보고자 한다’는 의도로 출사표를 던졌다.
자신의 뼈아픈 경험을 바탕으로 ‘한 켜의 거품 없이 단단한 존재의 벽돌로 자기를 쌓아 올린 자아의 달인’을 찾아 나섰다. 평균 연령 72세, 오롯이 자기 인생을 산 16인의 어른을 이 책에 실었다. 16인에게는 이러한 공통점이 있었다.
“성취와 업적에 압도당하지 않고 ‘일한다’는 본연의 즐거움을 오래 누리는 사람”
이 문장은 인생에 대한 절창이다. 성공과 성취를 향한 열망이 얼마나 헛되고 남의 눈에 사로잡힌 것이라는 것을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은 알고 있었다. 이 책은 실버 세대뿐 아니라 이 시대에 실망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도 새로운 성찰의 기회를 마련해 준다.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위안과 따스한 지혜가 출렁이고 세월과 용광로 같은 현실을 헤쳐 나온 다디단 지혜가 스며 있다.
“100세를 앞둔 김형석 선생님은 여전히 매일 밤 일기를 쓰며 글쓰기를 훈련 중이다."
100세에도 왕성하게 강연과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그는 ’60세쯤 되면 철이 들고 내가 나를 믿게 된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는 이때부터“라고 했다. 또한 ’베푸는 삶이 행복하고 가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문규 기자
최고령 현역 디자이너의 ‘건달론’
최고령 현역 디자이너 노라노 선생의 ‘건달론’은 어떤가. "남이 내 비위를 안 맞춰 주니 내가 먼저 내 비위에 맞춰 줘야 한다"는 말은 자기 억압이 곧 생존이라 여기며 숨죽이던 우리들의 숨통을 틔워 주는 산소 같은 일침이다.
니시나카 쓰토무는 “운은 하늘의 귀여움을 받는 것”, 디자이너 하라 켄야는 “이것으로 충분하다”며 자제력을 권하고, 재일학자 강상중은 “나를 궁지에 몰지 말라, 올인하지 말라”는 강렬한 자기 선언으로 세상의 신화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한다.
“행복하진 않았지만 축복받은 인생이었다. 이젠 불완전해도 괜찮다”는 완벽주의자 정경화의 반가운 변심, 이성복 시인, 동물학자 최재천의 ‘가성비’ 높은 아량 등 한 편 한 편에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내공이 깊이 스며 있다.
한순 도서출판 나무생각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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