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야화 (22)
* 숙맥선비
파장이 가까워 오는데도 닭을 열 마리도 팔지 못한 닭장수는 쪼그리고 앉아 잔뜩 인상을 쓰고 애꿎은 담배만 박박 피우고 있는데,
꼴에 선비랍시고 떨어진 넓은 갓을 쓰고 땟국이 흐르는 두루마기에 염소수염을 매단 어리숙한 사람이 뚫어지게 장닭을 내려다보더니 대뜸 “이게 얼마요?”라고 묻지 않고 “이게 뭐요?”라고 물어 닭장수의 부아를 돋우는 것이다.
할 말을 잃고 촌선비를 째려보던 닭장수가 “봉황이요 봉황!” 냅다 고함을 질렀다. “이게 말로만 듣던 봉황이로구나.”
촌선비가 허리를 숙여 장닭에 코가 닿을 듯이 보더니 “이게 얼마요?”라고 묻자 “쉰냥이요 쉰냥.” 닭장수는 소리질렀다.
촌선비는 뒤돌아서서 허리춤을 풀고 만지작거리더니 쉰냥을 닭장수 손에 쥐어주고 닭을 안고 유유히 사라졌다.
“우헤헤헤 이게 웬 횡재냐!” 온종일 장사한 것보다 단 한방에 더 많은 돈을 챙긴 닭장수는 입이 찢어졌다.
닭값의 열배도 더 받아 챙긴 것이다. ‘저런 미친놈이 하루에 한놈만 걸려도 좋으련만….’
닭장수가 신이 나 선술집에서 막걸리 사발을 비우고 있을 때 동헌에서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이방이 사또에게 다가가 “나리, 웬 미친놈이 수문장에게 떼를 쓰며 사또께 봉황을 올리겠다고 야단입니다.” ‘봉황?!’ 사또는 눈이 둥그레졌다.
꾀죄죄한 선비가 보자기로 싼 봉황(?)을 들고 사또 앞에섰다.
“그 속에 봉황이 들었단 말이냐?” “그러하옵니다. 불철주야 우리 고을을 위해 애쓰시는 사또님께 드리려고…”
선비가 보자기를 풀자 장닭이 사또를 우롱하듯이 훼를 치며 꼬끼요~~~목청을 뽑았다.
“네 이놈! 이 사또를 농락하는 게냐. 여봐라 저놈에게 매운 곤장 스무대를 맛보여라.” “사또 나리. 분명히 봉황이라 해서 사왔습니다.”
선비가 봉황(?)을 사게 된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곧이어 닭장수가 잡혀왔다.
“네놈은 이 순진한 선비에게 닭을 봉황이라 속여 팔았겠다.”
얼굴이 불콰해진 닭장수가 “사또 나리 그게 아니고…”
선비가 닭장수의 설명을 가로챘다. “소인이 아무리 본데없는 숙맥이라지만 닭 한마리를 삼백냥이나 주고 살 턱이 있겠습니까?”
“뭐, 뭐, 뭐라고? 오십냥을 받았지 내가 언제 삼백냥을 받았어?!”
닭장수가 소리를 질렀지만 벌써 판세는 결정났다.
투자한 돈의 여섯배인 삼백냥을 챙긴 선비는 동헌을 나와 휘파람을 불며 주막으로 향했고 동헌에서는 철썩철썩 닭장수의 볼기짝 맞는 소리가 바깥까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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