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사람》
1.
대구의 약령시가 열리던 약전골목은 전국의 한약들이 판매되는 유명한 곳으로 역사가 350년이 넘었습니다.
조선시대부터 전국의 한약들이 판매되는 곳이었습니다.
이 약점 골목 한쪽 구석에는 맨바닥에 앉아서 풀을 파는 풀장수 정씨가 있었습니다.
50년 전에는 풀을 쑤어서 장에서 팔았습니다.
풀 한 덩어리 사다 벽도 바르고 창호지로 문도 발랐습니다.
당시에 정씨는 늘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돈만 생기면 술을 먹고 행패를 부리고 집에서 아내를 때리고 했습니다.
그의 아내는 대구 제일교회 성도였습니다.
교회에 가면 늘 마음이 편안하고 말씀을 들으면 은혜가 되어 그 재미로 사는 성도였습니다.
어느날 대구 제일교회에 유명한 김익두 목사님이 부흥회 인도하러 오셨습니다.
원래 김익두는 깡패였고 술주정뱅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를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장에 갈 때마다 성황당에다가 돌을 던지면서 빌었습니다.
"오늘 제발 김익두를 만나지 않도록 해주세요."
김익두는 시장 입구에 다리를 쫙 벌리고 서서 다리밑으로 지나가라고 했습니다.
다리 밑으로 안갈려면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을 했습니다.
깡패였던 사람이 예수를 믿고 은혜받아 목사가 되어 대구 제일교회에 부흥회를 인도하러 왔고 은혜가 넘쳤습니다.
특히 풀장수 정씨의 아내가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루는 은혜 받고 저녁 늦게 집에 오는데 남편이 술에 취해서 아내가 들어오자 마자 뺨을 때렸습니다.
다른 때는 맞으면 대들었는데 뺨을 한 대 때리니까
“여보, 내가 늦게와서 당신의 마음이 상했다면 이쪽 뺨도 때리세요"
"그래?"
그리고 때리려고 하니까 마음이 이상하더랍니다.
다른 때와 달리 한 대를 맞고는 나 때문에 당신 마음이 상했다면 한 대 더 때리라고 하니까 놀라서 "오늘 교회에서 무슨 일 있었냐?"고 물었습니다.
그의 아내가 은혜 받은 이야기를 하며 “우리 교회에 부흥회에 오신 분이 김익두 목사님이신데 원래는 술주정뱅이였고 깡패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목사님이 되었대요.
당신도 나하고 한 번만 교회에 가요”
남편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니까 그 다음날 따라갔습니다.
3.
처음으로 교회에 갔는데 뭔가 가슴이 뭉클하고 이상했답니다.
그 다음날도 마지막 날도 갔는데 김익두 목사님이 설교 중에 "여러분!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이왕이면 하나님의 복을 받고 삽시다!
복을 받는 비결이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 주일을 잘 지키세요.
그러면 은혜받습니다.
두번째, 십일조 생활을 잘 하세요. 그러면 물질의 복을 받게 됩니다.
세번째, 새벽기도회 빠지지 마세요.
날마다 하나님이 형통의 길로 인도 하십니다.
네번째, 주의 종이 가르칠 때, 잘 듣고 생명 받쳐 그 말씀을 지키세요.
이렇게만 하면 나처럼 됩니다.
나는 원래 깡패이고 못난이고 사람들에게 늘 욕을 먹고, 저주 받고 했습니다.
오죽했으면 나를 만나지 않게 해달라고 성황당에 돌을 던지고 빌고 갔겠습니까?
그런 내가 그렇게 했더니 오늘 목사가 되어서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풀 장수 정씨가 들어보니까 과거의 생활이 자기하고 비슷했습니다.
술 주정뱅이에 깡패였던 사람이 목사가 되었단 말인가?
목사, 깡패가 그렇게 될 수 있었다면....
4.
풀장수 정씨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러면 나도 한 번 밑바닥 인생이 되지 말고 하나님의 복을 받아보자.'
그 다음 주일부터 꼭 주일을 지켰습니다.
풀파는 통 옆에 조그마한 상자를 만들어 놓고 10원어치 팔면 1원을 넣고 그 날부터 십일조 생활을 했습니다.
새벽마다 교회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주일날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며 나도 그렇게 되겠다고 그 말씀을 지켰습니다.
얼마 후 약전 골목에 술주정뱅이가 사람되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약전골목에서 장사하는 모든 사람들이 칭찬을 했습니다.
세상에 저렇게 변할 수가 있냐고......
한약방을 하는 친구가 하루는 정씨에게 “야! 너 이제 풀장사 그만하고 사람되었으니까 약방을 한번 해봐라. 약장사를 해봐.”
“나는 돈도 없고, 너도 알다시피 약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약국을 하겠냐?”
"너를 보니까 완전히 사람이 바뀌어졌어. 그러니까 내가 너를 도와줄 테니까 약장사를 해봐."
친구가 자기 집에 있는 약재료를 이것 저것 조금씩 주어서 약장사를 시작했습니다.
남들은 가게에서 하는데 길바닥에서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5.
친구는 노트에 약의 효능과 처방하는 방법에 대해서 써주었습니다.
감기걸린 사람이 오면 이렇게 지어주고 열병이 있는 사람이 오면 지어줄 약초를 알려주고 보약을 찾는 사람들이 오면 감초넣고 다른 약초를 넣고 지어주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정씨는 가르쳐 주는 것을 노트에 꼼꼼히 적었습니다.
그리고 환자가 오면 노트에 써있는 내용을 보면서 약을 지어 주는데 이상한 것은 정씨에게서 약을 지어 먹으면 어떤 병이든 낫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일자무식인데도 그에게 가서 약을 지어 먹으면 다 낫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그 골목에서 제일 잘되는 약국 주인이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대구서현교회를 시무하다가 천국에 가신 정규만 장로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정규만 장로님에게 복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에 대구 지방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정장로님네 약방에 가서 약을 지어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
정장로님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소문이 퍼졌습니다
당시에는 대를 이어야 한다며 여자들은 아들을 낳아야 했습니다.
아들을 못낳으면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정장로님이 약을 지어주면 아들을 낳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와서 물었습니다.
“정말 이 집에서 약을 지어 먹으면 아들을 낳을 수 있는 거에요?”
장로가 거짓말을 할 수는 없어서
“안먹는 것보다는 낫지요.”
그랬다고 합니다.
6.
또 대구에서 장티프스가 유행을 했는데 다른 약방에 가서 약을 지어 먹으면 안낫는데 정장로님네 약방에 가서 약을 지어 먹으면 어떤 병도 나았습니다.
그래서 정장로님의 약방 앞에는 새벽부터 줄을 섰습니다.
장로님 약방에 약이 떨어지면 옆 집에서 빌려와서 지어주었는데 다른 집에서 약을 지어 먹으면 안낫는데 정장로님이 빌려온 약으로 자기 약방에서 지어 먹으면 낫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약방 주인들이 정장로님 약방에 와서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약을 짓길래 우리 약을 먹으면 안낫고, 당신이 지은 약을 먹으면 낫습니까?"고 물었습니다.
"네, 특별한 재료가 하나 들어갑니다."
"그것이 뭡니까?"
"당신들이 쓰지 않는 재료가 우리 약에는 들어갑니다.
기도라는 재료가 들어 갑니다."
장로님은 약을 지을 때마다 한 봉지 한 봉지 지을 때마다 기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남의 것을 빌려다가 지어 주어도 병이 나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장로님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복 받을 사람은 언제나 복 받을 짓을 합니다.
7.
교회를 새로 짓게 되었을 때 정규만 장로님이 건축위원장이 되었습니다.
돌로 교회를 짓자고 결정이 되었습니다. 전국에서 제일 좋은 돌이 전라북도 황등에서 나옵니다.
익산군 황등에서 기차를 대절하여 돌을 대구까지 싣고 가서 교회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건축이 시작되자마자 정규만 장로가 병으로 사경을 헤매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께 서원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생명을 살려 주옵소서.
살려주시면 목숨 다하여 종의 재산을 바쳐 성전건축에 헌신하겠습니다.” 하면서 산에서 기도하는데 어떤 짐승이 모르는 나무를 자꾸만 갉아먹고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약초로구나 하고 그것을 삶아 먹었더니 낫게 되었습니다.
병이 나은 후에 정장로님은 교회 건축 비용 절반이상을 약속대로 혼자 감당했습니다.
그는 엄청난 헌금을 했습니다.
건축을 마치고 성도들은 헌당식을 하자고 하니까 장로님이 하지 말자고 했습니다.
내가 죽으면 합시다.
8.
내가 살았을 때 헌당식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내가 받을까 두려우니까 나 죽으면 하세요.
그래서 헌당식을 못하고 기다렸습니다.
장로님이 1969년 1월 초에 돌아가실 때 얼굴이 천사처럼 되었고 마지막 돌아가실 때 오른손을 들었답니다. 그러면서 천사들이 나를 데리러 왔다고 말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장로님이 돌아가시고 난 며칠 후인 1969년 1월 29일에 서현교회는 헌당식을 했습니다.
우리는 조금만 하고도 우쭐하는데 정규만 장로님은 교회를 위해 거의 혼자 짓다시피 하고도 절대로 자기 생전에 헌당식을 못하게 하고 자기 죽은 다음에 헌당을 하도록 했습니다.
지금도 대구에 가면 정규만 장로님을 존경하고 흠모합니다.
왜요? 겸손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붐도 겸손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복을 받고 여러분의 후대가 복을 받습니다.
9.
정규만 장로님은 대구 주변의 시골에 있는 어려운 교회 50~60교회를 아무도 모르게 도와주었습니다.
수십년 동안 공부는 하고 싶은데 집이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준 학생만 수백 명입니다.
그 중에 목사가 된 사람이 수십 명입니다.
어느 집이 어렵다고 하면 몰래 그 집을 도와주었는데 대구의 수백, 수천 가정이 정장로님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주변에 어려운 교회들을 도우니까 많은 교회에서 새벽예배 기도할 때마다 정장로님의 약방이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야 선교비가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또 신학생들 수십 명이 새벽마다 정장로님의 약방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왜요?
약국이 잘되어야 장학금이 오니까요.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들 수백, 수천 가정을 도와 주었습니다.
10.
정규만 장로님이 주일학교 부장을 할 때, 학생 중에 똑똑한 학생이 있어서 학비를 주어서 공부를 시켰습니다.
그 학생은 경북대학교를 졸업하고 총신대학원을 졸업하고 목사가 되었을 때에 자기교회 담임 목사님으로 모셨습니다.
바로 윤철주 목사님입니다.
윤철주 목사님이 정규만 장로님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저는 장로님의 아들뻘이고 그 분의 도움으로 제가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 제가 목회를 하며 심방을 가면 제 가방을 들고 꼭 따라 다녔습니다.
“장로님 이것이 웬일입니까?
제가 들어야 합니다.”
“아닙니다.
교인들이 보고 세상 사람들이 보아야 합니다.
목사님이 어떤 분인지를 보여드려야 합니다.”
그러면서 아버지 같은 분이 제 뒤에서 가방을 들고 저를 따라 다녔습니다.
한 번은 제가 새벽기도회를 가려는데 신문지 덩어리가 떨어져 있어서 펴 보니까 한 달 먹고 살고 아이들을 교육시키고도 남을 돈이 있었어요.
누가 이 돈을 마당에 놓았을까?
정장로님이 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다음에 또 떨어져 있어서….
그래서 하루는 초저녁부터 밤새도록 현장을 지키고 기다렸는데 정장로님이 오더니 던지고 가는 것입니다.
쫓아가서 잡았더니 장로님이 하는 말이 만약에 이 일이 새나가면 교인들이 목사님을 정장로가 먹여 살린다고 말이 날 것입니다.
절대로 그런 말이 나오면 안됩니다.
저는 약전골목의 풀장사 정규만이고 복은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이 일을 하나님만 아십니다.
목사님과 나만 알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ㅡㅡㅡㅡㅡ
저와 여러분이 정규만 장로님 같은 분이 되어서 교회와 성도들이 칭찬받게 되기를 바라며 고넬료처럼 기도 응답 받기를 축원합니다.
행10: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2019.1.12. 박일천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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