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 대기 전이, 진짜 나의 모습
복음 : 마태오 11,16-19
고해성사를 주다보면 “술을 좀 마셔서...”, “아이들이 말을 안 들어서...”, “며느리가 지만 알아서...” 등의 핑계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사실 고해성사가 아니라 죄를 지은 것에 대한 자기 합리화를 고해소에서 하게 됩니다.
나의 잘못을 환경 탓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실제 저는 그런 사람은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술을 마셔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가끔은 실제 보는 모습과 술에 취한 모습이 매우 다른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많은 경우가 말이 많아지고, 자랑을 하고, 욕도 하고 심지어는 폭력적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는 평상시에는 매우 강하고 말도 많고 날카롭지만 술 마신 후에는 매우 부드럽고 온순해지는 사람도 보게 됩니다.
과연 어떤 모습이 진짜 나의 모습일까요?
우리가 다 알고 있듯이 술에 취한 상태가 진짜 나의 모습입니다.
미국 미주리대학 심리학교수 ‘레이첼 위노그라드’교수는 156명을 대상으로 술을 마시고 나서와 술을 마시기 전의 성격을 조사하여, 음주후의 성격과 평상시의 성격이 차이가 없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물론 술을 마신 후에는 행동이 변화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평상시에는 그 성격을 숨기며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평상시의 성격은 참 성격이 아니고 술 때문에 그 성격을 감추는 인내심이 떨어지면 진짜 성격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평상시 내가 만들어놓은 가짜 성격을 자신의 진짜 성격으로 알고 술 마시고는 ‘실수’한 것이라 치부해버립니다.
그렇게 된다면 자신의 성격을 고치려하지 않고 술만 적게 먹거나 아예 끊어버리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해버립니다.
그렇게 술을 끊고 마치 죄를 짓고도 나무 뒤로 숨거나 무화과 잎으로 가리면 된다는 식의 ‘자기합리화’에 속게 됩니다.
자기 합리화는 자신도 자신을 온전히 볼 수 없게 만듭니다.
자기합리화를 다른 말로하면 ‘핑계’라고 합니다.
그래서 핑계는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하는 거짓말입니다.
그 거짓말에 속으면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처럼 자신은 의인이 되고 자신처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사람이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당신을 믿으려하지 않는 사람들을 나무라십니다.
그들은 마치 장터에서 아이들이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고 곡을 해도 울지 않았다고 노래 부르는 것처럼, 세례자 요한은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다며 비판하고 예수님은 먹고 마신다며 비판하는 이들입니다.
본래 믿지 않으려 아집을 감추기 위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복음에서 아이들을 등장시키는 이유는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핑계 없이 믿을 줄 알기 때문입니다.
핑계가 없으니 자신의 처지를 바로 알게 되고 누가 필요한지를 명확히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핑계는 나의 눈을 멀게 만들고 자신 혼자 다 해낼 수 있다고 믿게 만들어 주님께 의탁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개는 나무라면 눈을 깔고 진짜 잘못이나 한 것처럼 깽깽되지만 고양이는 내가 무슨 잘못이냐는 듯 대들기도 합니다.
개는 자신을 종으로 알고 고양이는 주인을 종으로 안다고 합니다.
우리도 하느님 앞에서 이렇게 나눠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냥 단순하게 자신을 인정하고 핑계를 대지 않는 연습을 하면 그런 사람은 주인이 자신을 바로잡아줍니다.
그래서 아이가 부모 밑에서 어긋나는 일이 없는 것처럼 핑계를 댈 줄 모르는 사람도 그렇게 보호를 받게 됩니다.
핑계대지 않는 연습을 합시다.
핑계라고 생각하면 입을 막고 모든 비난을 다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합리화를 안 하는 사람을 좋아하게 돼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오해받을 수 있으나 누구나 이 핑계, 저 핑계 대는 사람이 결국은 고집불통임을 잘 압니다.
핑계를 잘 대는 사람은 똑똑한 것 같지만 결국은 사람들로부터 그 반대 취급을 받습니다.
이렇듯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라고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 외의 말은 다 핑계고 자기 합리화이고 악에서 나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옭아매는 자아로부터 벗어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이렇게 자아가 일으키는 자기합리화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핑계를 대지 않는 사람이 진실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진실한 사람만이 보호받을 수 있고 변화할 수 있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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