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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입국(敎育立國)(2)] 김진홍의 아침묵상

교육입국(敎育立國)(2)2018-11-29
교육입국이란 주제로 10여 회 글을 보내려 한다. 어제 글에서 교육입국의 선각자이신 도산 안창호 선생의 일화를 잠깐 소개하였다. 오늘 글에서는 도산 선생의 일화를 먼저 적는다. 도산 선생이 약관 25세 나이에 교육 선진국인 미국으로 가서 교육 제도와 교육 사상을 배우려 유학길에 올랐다.

샌프란시스코 항에 도착하여 숙소를 정한 후 시내를 한 바퀴 돌아보다 조선의 인삼 장사꾼 둘이 상투를 거머쥐고 마치 개싸움 하듯이 싸우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백인들이 진기한 구경거리로 알아 박수를 치며 싸움을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눈물을 흘리며 싸움을 말렸다. 그런 경험을 통하여 민중에 대한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뼛속 깊이 절감하였다.

도산 선생이 로스앤젤레스 부근의 리버사이드 지역으로 옮겨 동포들을 위하여 일할 때이다. 그 지역은 오렌지 밭이 끝없이 이어지는 지역이었다. 조선 노동자들이 밀감 밭에서 일하며 일당을 받아 살고 있었다. 그런데 주말마다 노임을 받으면 술 마시고 도박하여 탕진하곤 하였다. 그리고 다음 주에는 통보도 없이 결근하곤 하여 조선 노동자들에 대한 인식이 극도로 나빴다.

도산은 노동자들 한 분 한 분을 찾아다니며 설득하였다. "오렌지 하나를 딸 때마다 독립 운동하는 마음으로 땁시다"고 설득하였다. 도박판을 찾아다니며 호소하였다. "조국은 일본제국주의의 종노릇하게 되었는데 우리가 문명국에 와서 배워서 조국을 독립할 생각을 하여야지 이렇게 술로 도박으로 살아선 안 됩니다"고 호소하였다.

동포들이 처음엔 선생을 구타하고 피하고 욕을 퍼붓고 하더니 세월이 흐르니 도산 선생의 진정에 감동되어 생활에 변화가 일어났다. 이런 모습을 지켜 본 백인 사장이 도산에게 2만 불을 주며 조선인들을 돕고 싶다 하였다. 도산은 그 돈으로 회관을 얻어 저녁에 모여 영어 공부하고 조선 역사를 공부하고 주일이면 예배처로 사용하였다.

중요한 것은 그 돈 2만 달러를 한 달 만에 다 갚았다. 노동자들 사이에 자각이 일어나 헌금하여 모두 갚게 된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백성들은 좋은 지도자를 만나 바른 교육을 받으면 변화되게 된다. 그래서 국민 교육이 중요하다. 안창호 선생의 감화를 받은 조선 노동자들이 상해임시정부에 기부금을 보냈다. 기부금이 많을 때는 상해임시정부의 월 비용의 삼분의 이를 충당할 정도였다.
20181129 두레수도원 금식수련 중 서재 담화 700.jpg두레수도원 금식수련 중 서재 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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