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새벽 4시를 기하여 일제히 남침한 북한 인민군은 거침없이 내려와 삽시간에 서울을 점령하였다. 그 여세로 곧장 한강을 건너 남으로 계속 남진하였더라면 유엔군이 참전할 수 있는 기회도 놓치고 남한 전체가 적화(赤化)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상외로 한 기적이 일어났다. 서울을 점령한 인민군이 그대로 남진하지를 아니하고 서울에 3일간 머물렀다.
그 3일이 한국군에게는 황금 같은 3일이었다. 그 3일간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던 국군이 숨을 돌려 전열을 재정비할 수 있는 기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 3일이란 황금의 기간 동안 미군이 움직이고 유엔군이 공식적으로 참전한다는 결의가 이루어졌다. 그래서 대구-마산을 잇는 방어망이 꾸려지고 낙동강 방어진이 결성되어질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나는 군사전략을 모르는 민간인이기에 자세한 전선의 내용을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인민군이 서울에서 3일간의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에 남한 땅이 공산화되어질 수 있는 길을 막은 황금의 3일이 되었다는 사실은 확실히 알고 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의문은 인민군이 왜 그 3일을 서울에서 허비하였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몇 가지 설이 있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정답은 나오지 않은 듯하다. 그 기간에 한국 전선을 방문한 맥아더 원수가 있었다. 수원 부근의 전선에서 빈약한 소총을 들고 방어진지를 지키고 있는 한 국군 사병에게 맥아더 장군이 물었다. "귀관은 어느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려는가?" 사병이 답하기를 "철수 명령이 내려질 때까지 목숨을 걸고 지키겠습니다."
이에 맥아더 장군이 다시 물었다. "귀관에게 무엇을 도와주면 좋겠는가?" 사병이 답하기를 "싸울 수 있는 무기를 주십시오." 이런 대답에 감동을 받은 장군이 말하기를 이런 군인과 백성이 있는 나라를 지키는 일에 도와주어야지 하고는 돌아가 미군을 파병하였고 이어서 유엔군이 참여하여 맥아더 장군이 그 사령관이 되었다. 인민군이 서울에 머문 3일이 기적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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