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휴먼 시대, 바로 서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지금 엄청난 속도로 변하고 있습니다. 가속도가 붙어 과거의 지식과 경험만으로는 그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인공지능과 로봇,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 그들의 융합이 앞으로 펼쳐낼 우리의 미래는 예측의 문제를 넘어 이제는 우리 안에 심각한 우려와 불안을 낳고 있습니다.
싫다고 거부할 수도 없습니다. 이미 우리는 예측할 수 없는 그 곳을 향해 달리는 거센 변화의 물결 앞에 서 있습니다. 풍요와 편리에 대한 욕망이 낳은 물결인데, 과연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행복을 가져다줄지 예측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긍정적으로 말하는 이도 있지만, 오히려 심각한 양극화와 우리 삶의 기반인 지구를 소멸시켜 미래세대의 생존을 더 이상 불가능하게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미 지구는 수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거대한 기술과 산업이 그 수용능력을 늘릴 수 있다는 자만심(교만)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탐욕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상황에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상황이 심각합니다. 우리들이 초래한 것으로 그 영향력이 커지고 있고 그에 따라 상황도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수용능력으로 보면 이미 1.5배나 초과됐고, 이대로 2030년이 되면 2배 이상 초과될 것입니다.
얼마 전, 파리협정 이후 두 번째 열린 기후총회 때 논의한 기후 대응에는 내전국인 니카라과를 제외하면 미국만이 빠져 있습니다. 온실가스 배출 2위 국가라는 부끄러움은커녕 역사적 책임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참여하고 있기는 하나, 그 책임에는 훨씬 못 미치고 있습니다. 기후총회 때 발표된 기후변화대응지수로 보면 우리나라는 최하위 국가(58위)입니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계속 증가하고 있는 데다 자발적 감축계획조차 국제사회의 기대에 못 미치기 때문인 듯합니다.
어쩌면 지금은 인간의 영향이 극대화되어 가고 있어 “인류세”라 일컬어지는 혼동과 변화, 종말과 창조의 지질학적, 역사적 순간을 성찰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의 문명은 수명을 다했습니다. 문명은 쇠퇴하고, 세상은 더 이상 좋아질 것이라 기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생명들이 사라졌고, 우리의 일상의 삶이 누군가에게 폭력이 되는 참으로 ‘불편한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생명(유전자)을 조작하는 일을 넘어 인공 지능과 로봇 인간 등이 출현하여 인간의 정체성과 주체성, 그리고 그 관계성까지 혼란스럽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과학기술의 발전 및 개입을 통한 인간, 자연 및 기계의 혼종, ‘포스트휴먼’ 시대의 ‘아직’과 ‘이미’ 사이에 서 있습니다. 서둘러 답을 내놓기보다 근대 휴머니즘의 인간 개념을 뛰어넘는 연습을 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포스트 휴먼’의 저자 로지 브라이도티가 말하는 대로 ‘동물-되기’, ‘지구-되기’ ‘기계-되기’, 더 나아가서는 ‘강물-되기’ ‘나무-되기’ ‘플라스틱-되기’ ‘전기-되기’ 등을 하다보면, 각자 자신의 자리뿐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하나로 깨어나는 길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인간은 인간으로, 자연은 자연으로.”
아직 오지 않았지만 이미 삶 안에 들어와 있는 ‘포스트휴먼’ 시대 앞에서 당황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라(시46)"는 말씀에 의지해, 하나님과 인간과 자연의 자리를 다시금 마음 깊이 새기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다가오는, 아니 이미 우리 앞에 온 ‘포스트휴먼 시대’에 우왕좌왕하지 말고, 그냥 “창조주 하나님에게로 돌아가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인간만이 아닌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을 품는’ 신학으로, 신앙이 바로 세워지고, 교회가 교회다워진다면, 온 생명이 풍성함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날이 오리라 믿고 기도합니다.
유미호 /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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