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슈아 리프킨의 바흐 칸타타 80번 ‘내 주는 강한 성이요’
종교개혁 500년의 노래,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돌아오는 주일은 종교개혁 주일입니다. 종교개혁 기념일은 매 년 10월 31일인데 이는 1517년 루터가 면죄부에 대한 95개의 테제를 게재함으로 종교개혁의 촉매가 되었던 사건이 일어난 날입니다. 개혁주의 전통의 많은 교회들은 10월 31일 직전의 주일을 종교개혁 주일로 지킵니다. 종교개혁 주일에는 대부분의 교회가 찬송가 585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부는데 찬송가 585장은 그 제목의 오른쪽과 왼쪽 양 어깨에 마르틴 루터의 이름을 훈장처럼 달고 있습니다. 루터가 1529년에 이 곡을 작사 작곡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1529년이라는 연도는 이 곡이 실린 가장 오래된 찬송곡집의 출판연도에 의한 추정이며 독일의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는 이 찬송이 1521년 7월 역사적인 회의를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보름스에 입성하는 루터와 그의 지지자들에 의해 불리어졌던 것이라고 말함으로 이 찬송의 역사적 지평을 더 넓혀주었습니다.
그로부터 약 200년이 지난 1723년, 바흐는 라이프치히의 종교개혁 주일을 위하여 칸타타 BWV 80 ‘Ein' feste Burg ist unser Gott/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작곡했습니다. 200여 개에 달하는 바흐의 교회 칸타타를 대표하는 곡이니 만큼 이 곡을 녹음한 음반은 굉장히 많습니다. 그 음반들은 크게 세 가지 그룹으로 나눌 수 있는데 현대 오케스트라에 의한 연주, 원전연주(HIP or History-informed Performance), 그리고 한 파트를 한명의 성악가가 부르는 최소편성(OVPP or One Voice Per Part) 연주입니다. 리히터와 릴링의 음반이 첫 번째 카테고리에 속하며 아르농쿠르와 헤레베헤 가디너 등이 지휘한 원전연주 음반들이 전체음반의 대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원전연주적인 OVPP연주로는 리프킨의 음반이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히 음악적 표현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곡 전체에 대한 해석의 문제이며 더 나아가 종교개혁에 대한 받아들임의 문제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 음악을 이미 완성되고 승리한 종교개혁의 승전가로 부를 것인가 아니면 아직 진행 중인 종교개혁의 진군가로 부를 것인가의 선택이 이 표현적 차이에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원래 이 합창곡에는 트럼펫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바흐 사후에 그의 아들 빌헬름 프리드만이 오보에 대신에 트럼펫을 편성시켰고 팀파니도 추가해서 웅장함을 더한 것이지요. 그러므로 루터는 물론이고 바흐 역시 이 곡을 종교개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승전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임할 때까지 계속 진행되어야 할 종교개혁의 진군가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힘차고 빛나는 멜로디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 곡을 승리의 노래 혹은 확신의 노래로 알고 있지만 가사만 두고 본다면 이 찬송시의 화자는 핍박과 시련으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압박감과 스스로에 대한 불확실 속에서 떨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 그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붙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 그는 이미 승리하고 있음을 뜨거운 가슴 속에서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만용과 근거 없는 확신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날로 진화하는 죄악과의 싸움 속에서 여전히 분투하며, 하나님과 진리 앞에서 떨리는 마음을 품으며, 그런 가운데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는 믿음이 이 찬송과 이 찬송이 상징하는 종교개혁의 정신입니다. 종교개혁은 완성된 것이 아니며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개혁적 유전자는 강물처럼 우리 안에 그득하고 기운차게 흐르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웅장한 승리의 노래와 같은 현대 오케스트라 연주보다는 보다 인간적이고 어설피 흔들리는 듯한 원전연주를 지지하며 그 중에서도 OVPP로 연주된 조슈아 리프킨의 음반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종교개혁이 집단 간의 싸움이 아니라 나 한사람의 끊임없는 죄악과의 투쟁이요 지속적인 자기혁신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점에서 파트당 1명의 성악가 총 4명이 연주한 리프킨의 음반이 이 음악과 가장 잘 어울려 보입니다.
첫 합창곡 중간에 베이스에 이어서 테너-알토-소프라노로 이어지는 ‘Der alte böse Feind/옛 원수 마귀는’이라는 가사는 오해가 없어야 합니다. 독일어 형용사 ‘alte’는 과거의 옛 원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창세기 3장에서 연을 맺은 이래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징글맞게 오랫동안 인간을 괴롭히는 원수 마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1번곡의 가사는 찬송가의 1절 가사와 동일합니다.
두 번째 곡은 소프라노와 베이스의 이중창입니다. 이 곡은 바흐의 모든 음악가운데 목회자로서의 제게 가장 큰 힘을 주는 곡입니다. 소프라노는 멜로디를 따라 루터의 코랄 2절의 가사를 부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우리는 곧 잃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친히 선택하신 정의의 사람이 우리 앞에서 싸울 것입니다(후략)”
한편 베이스 솔로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모든 것은 승리를 위해 선택 받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의 깃발 옆에서 세례 받으며 참된 맹세를 한 사람은 영적으로 영원 영원히 승리할 것이다.” 라고 노래합니다.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하나 되어 일사분란하게 16분음표로 이어진 테마를 연주하는 가운데 오보에는 소프라노 멜로디를 더블링합니다. 이 에너지가 넘치는 곡을 듣고 혹자는 ‘기관총’을 떠올리기도 했고 일반적으로 현악상성부의 테마를 악마의 움직임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제게는 ‘내 안에 있는 복음의 생명력을 일깨워 주는 음악’이며 들불처럼 번져가는 진리의 활력을 느끼게 해 주는 음악입니다.
칸타타 BWV 80은 총 8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중 5번곡은 6/8 박자의 곡으로 루터 코랄의 3절 가사를 합창이 옥타브 유니즌으로 부릅니다. 마치 록 음악처럼 들리기도 하는 코랄 멜로디와 오케스트라의 쉴 틈 없는 움직임이 대조되는 매우 강렬한 곡으로 바흐의 천재성과 시대초월적인 면모가 잘 드러납니다. 이 찬송가가 막연한 승리의 찬송이 아님은 이미 말씀드렸었습니다. 그러나 이 칸타타 80번에는 참된 승리의 노래가 들어 있는데 그 노래는 강하고 우렁찬 노래가 아니라 오히려 7번 곡, 목가풍의 느리고 아름다운 듀엣입니다. 참된 기독교인의 승리의 에너지는 큰 소리가 아니라 평안함과 의연함 그리고 아름다움으로 표출됩니다.
“복되도다! 하나님을 그 입에 품는 자들이여, 그 마음을 믿음 속에 품는 자는 더욱 복되도다. 그 마음은 굴복되지 않으며, 원수를 무찌르나니 최후에 죽음을 무찌르게 될 때 면류관을 쓰게 될 것이다.”
500년이 흘렀습니다. 이 찬송도 함께 500년을 흘렀습니다. 한국교회의 적폐, 분열과 싸움, 비판과 독선의 시대도 이제는 끝낼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이 찬송을 새로운 루터의 원곡에 걸맞게 새 시대의 새 노래로 다시 불러야 할 때입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또 다른 개혁을 이야기 하는 목소리가 많이 들립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비판과 다툼 이전에 개혁의 열망에 담긴 우리의 살아있음입니다. ‘개혁을 늘 이야기 할 수 있는 살아있음’ 말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오시기 까지 우리가 언제나 개혁의 선상에 놓여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루터와 그의 동지들이 보름스를 향하는 길에서 두려움과 떨림 속에서 불었던 이 찬양을 우리도 이미 끝난 개혁의 승전가로서가 아니라 아직 계속 되고 있는 개혁의 진군가로서 계속해서 불러야 합니다. 여전한 두려움과 떨림 속에서, 하지만 믿음을 붙들고... 나지막이...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서, ‘함께’ 불러야 합니다.
조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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