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사를 표현하는 방법 >
본문 9절에 표현된 ‘곡식에 낫을 대는 첫 날’은 보리의 첫 이삭 한 단을 제단에 요제로 바치는 초실절을 뜻합니다(레 23:10-11). 이 날은 유월절 후 첫 안식일 다음 날인 아빕월 16일로서 신약 개념으로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입니다. 칠칠절은 초실절에서 ‘7 곱하기 7이 되는 날인 만 49일이 지나 50일째가 되는 날로서 오순절(오십일절)이라고도 하고 이때는 밀을 거두는 때이기에 맥추절이라고도 합니다.
맥추절은 추수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서 밀의 첫 소산을 바칩니다(레 23:15-21). 추수감사주일 예배는 청교도 신앙의 전통을 따라 11월 셋째 주나 넷째 주에 드렸지만 성경에 없는 감사 절기이기에 한국은 실제 추수가 대략 끝나는 10월 둘째 주나 셋째 주에 드리는 교회가 점차 많아지는 추세입니다. 반면에 구약의 전통을 따라 맥추감사주일을 키질 때는 부활주일에서 7번째 되는 주일에 지킵니다. 칠칠절 혹은 맥추절에 어떻게 감사를 표현했습니까?
1. 형편대로 자원해 드리십시오
칠칠절을 지킬 때는 하나님께서 주신 복에 따라 자기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감사 예물을 드리라고 했습니다(10절). 부자는 소를 드리고, 일반인은 양이나 염소를 드리고, 가난한 사람은 집비둘기나 산비둘기를 드리고, 아주 가난한 사람은 고운 밀가루 한 움큼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형편대로 자원해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강요에 의해서나 빚을 내서 헌금하면 덕을 세우지 못할 수 있습니다. 부흥회 때 자기 장기를 팔아서 건축헌금을 드린 얘기를 듣고 감동해서 그와 유사한 극단적인 방식으로 헌금하겠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강요해서 드리는 헌금이나 감정적인 충동에 의해서나 주변의 시각을 의식해서 드리는 헌금을 원하지 않고 기쁘게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헌금을 원하십니다. 그 계명을 받을 때 백성들이 얼마나 심령의 자유와 평안을 느꼈겠습니까?
옛날에 한 여인이 숲 속의 무덤 셋이 있는 곳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호랑이한테 재작년에 남편을 잃고 작년에 시아버지를 잃고 그때는 아들을 잃은 것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왜 그런 호환 중에도 이곳을 떠나지 않나요?”라고 묻자 그녀가 대답했습니다. “이곳에 호환은 있어도 과도한 세금이나 노역을 물리고 재물을 빼앗는 관리는 없어요. 그래서 못 떠나요.” 그 고사에서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사납다)’란 말이 생겼습니다.
인간관계에서 공동체 생활에서 ‘드리는 삶’은 책임감과 신실함을 나타내는 중요한 표시입니다. 하나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 드릴 줄 아는 삶은 신앙상태와 신앙성숙의 중요한 지표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도 헌금은 강요되면 안 됩니다. 가혹한 신앙은 다른 어떤 것보다 더 무서운 후유증을 낳을 수 있습니다. 자발적으로 기쁘게 헌금할 때 심령에도 기쁨이 넘치고 하나님도 기뻐하십니다.
2. 소외된 자와 함께 하십시오
맥추절에는 노비와 성 중에 있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예루살렘 중앙 성소에서 하나님 앞에서 즐거운 축제를 벌이라고 했습니다(11절). 축제는 잘 먹고 잘 놀기 위한 행사만은 아닙니다. 축제는 특별히 소외된 사람들을 생각해서 같이 즐거워하는 행사입니다. 그 행사를 통해 이웃 사랑도 훈련받습니다. 감사할 때는 가난한 이웃과 함께 즐거워하며 감사하십시오. 가난한 자를 멸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때는 늘 마음 한 구석에는 기쁨과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는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십시오. 주변인의 행복을 생각하지 않고 중심인의 행복을 누리겠다는 것은 신기루에 가깝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남보다 많이 누리게 하셨다고 생각하고 감사하면 그 감사한 마음을 소외된 자와 함께 하려는 마음과 실천으로 표출하십시오.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소외된 자들이 눈에 보이는 것이 정상입니다.
소외된 자를 생각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고 성령충만함을 나타내는 또 하나의 지표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돌처럼 딱딱한 마음이 사라지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이 생깁니다. 비바람이 심한 날 온 몸으로 그 비바람을 맞는 풀잎과 꽃잎을 보며 안쓰러운 마음을 가지는 것도 하나님이 주신 마음입니다. 다른 것에 대해 너무 걱정하는 마음을 가지지 말되 다만 소외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갈까에 대해서는 걱정하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그런 마음은 자신의 누림에 대해 하나님의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하기에 생기는 것입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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