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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베이커스필드 두레마을에서] 김진홍의 아침묵상








미국 베이커스필드 두레마을에서2017-02-28
주일(26) 저녁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왔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북쪽 샌프란시스코 쪽으로 170km 지점에 베이커스필드 두레마을이 있다. 넓이 72천 평 마을 위에 농장이 있고, 청소년 수련장과 영성수련단지가 세워져 있다. 농장에는 포도밭과 감나무, 대추나무 그리고 도라지 밭이 있다. 이곳은 땅이 비옥하고 기후가 더워 과일이 당도가 높고 수확도 풍성하다.
지난해에는 도라지를 심었는데 일 년이 지나니 한국에서 6년 정도 자란 만큼 자랐다. 첫해여서 3만 불 가량 수익을 올렸는데 올해는 제대로 재배하여 5만 불 이상의 수익을 올리려 한다. 이번 미국 나들이는 베이커스필드 두레마을에서 농사일을 도우며 한가로운 시간을 가지려고 왔다.
두레마을공동체는 늘 농업을 중시하여 왔다. 한국에 있는 동두천 두레마을과 지리산 두레마을에서는 물론이려니와 중국 연변에 있는 두레마을, 그리고 미국 베이커스필드 두레마을에서도 농업을 기본으로 하여 공동체를 발전시켜 왔다. 요즈음은 이 나라 저 나라 할 것 없이 먹거리가 오염되어 있다. 일본에서는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로 일본인들이 자국 식품에 자신감을 잃고 있고, 중국에서는 독한 농약 사용량이 지나친데다 가짜 불량식품이 많아 중국 소비자들은 한국산 식품을 선호한다.
중국인들이 지금은 한국 화장품을 많이 구입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한국의 식품이 화장품의 인기를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한국 농민들은 이렇게 큰 시장에 신뢰 받는 브랜드로 진출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기에 두레마을 공동체가 농업 공동체로서 벤치마킹하는 기업이 스의스의 네슬레이다.
스위스는 국토가 작고 산으로 이루어져 농업이 발전하기 어려운 나라이다. 그러나 스위스의 식품회사인 네슬레는 세계 120개국에 뻗어나가 연간 매출이 20조를 넘어선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이런 분야에 도전하려는 기백을 지녀야 하고 비전을 가져야 한다. 오늘 한국을 떠나 베이커스필드 두레마을로 와서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가졌기에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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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베이커스필드 두레마을 도라지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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