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국 칼럼] 끝과 시작
입력 : 2016.12.29 11:40
끝이라는 말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딱 잘라 말할 때의 의미는 단호함이다. 절단이나 단절을 의미하는 끝의 단호함은 결연한 의지를 나타낸다.
그러나 끝은, 냉철한 마지막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극한 환경에서의 탈출이나 오랜 시간을 인고해야 했던 가난이나 질병 같은 처절한 환경으로부터 해방되었을 때의 의미는 평안함이고 희열이다.
또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환경이나 인관관계에서의 갈등으로부터 해방되었을 때의 의미는 후련함일 수도, 시원함일 수도 있으며, 섭섭함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끝은 카멜레온처럼 다양한 모습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애증의 경고할 때의 끝은, 마지막이 아니라 중간 과정을 의미한다. 더러는 한 번 더 기회를 제공하는 의미로 쓰일 때의 끝은, 넓은 포용력을 발휘하는 군자의 마음과 같다.
끝은 마지막이 아니라 어떠한 과정의 정중앙을 의미한다. 선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끝이 보인다'는 의미는 소중한 희망이고 소망이다. 그래서 끝은 처음이고 중간이며 맨 나중이다.
겨울이다. 서민들의 겨울나기가 고단한 계절이다. 사랑을 나누고자 하는 기부금이 현저하게 줄었다고 한다. 청년 실업률은 증가하고 결혼 연령은 점점 늦어지고 있으며, 새해의 경제 전망은 어둡다고 예견되고 있다. 사회 전반이 북풍한설로 꽁꽁 얼어붙어있다.
그래도 끝은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지진이 발생되고, 동족이 동족을 죽이는 대립이 속출되고, 형제가 형제를 죽음으로 내모는 지경일지라도, 세상은 끝이 아니라고 성경은 일축하고 있다. 더불어 세상의 끝은,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어야만 다가온다고 일깨우고 있다.
또 한 해가 시작된다. 겨울을 시작으로 다시 겨울이 되면 한 해가 끝나고 새로운 한해가 시작된다. 그래서 끝은 마지막이면서 처음이다. 끝의 얼굴은 분명히 동그라미이다.
끝은 시작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강강수월래 놀이를 하고 있다. 모든 인간은 죽음을 향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인간의 삶은 고난의 여정이다.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죽음이 마지막이라는 절망의 의미로 끝이라면, 죽어야 하는 인생들은 참으로 가련하고 불쌍하다. 그러나 죽음은 끝이 아니다. 한 알의 밀알이 썩어야만 많은 밀알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처럼 죽음은 소멸과 탄생이 순환하는 섭리의 과정일 뿐이다.
글씨를 깨우치면서부터 많은 서적들을 읽어보았지만, 인간이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서적을 본 기억은 없다. 더구나 인간이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환희를 보장해주는 책을 본 기억은 더더욱 없다. 이 책뿐이다. 성경. 신약성경 165쪽, 요한복음 10장 25절과 26절에 기록되어 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
죽음은 영원한 삶의 시작이다. 한 해를 끝마치고 새로운 한 해를 믿음으로 시작해야 하는 이유이다. 끝은 곧 시작이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는 믿음 안에서 그렇다.
/하민국 목사(검암 새로운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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