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나루 소금 나르던 알록달록 골목길도… 곧 사라질 추억
10여년을 끌어온 아현 재정비촉진지구 염리3구역 재개발이 올겨울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주민의 90% 이상이 떠난 골목을 찾았다.
서울에서 보기 드문 모습이라 '출사족' 사이에서 각광받고 있다. 뚫린 창 너머로 보이는 실내에서 을씨년스럽기보다는 이국적인 매력을 느낀다는 소리다.
입력 : 2016.10.27 04:00
염리동 소금길
노란색 가로등은 가을 은행잎처럼 곧 사라질 것이다. 국내 최초로
'범죄예방디자인(CPTED)'을 적용했던 서울 마포 염리동 '소금길' 구간 절반가량이 자취를 감춘다. 10여년을 끌어온 아현
재정비촉진지구 염리3구역 재개발이 올겨울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아직 가을볕이 따뜻했던 24일 주민의 90% 이상이 떠난 골목을
찾았다.
◇재개발 앞둔 '응답하라 1988' 동네
숭문고 정문 근처 북카페 소금나루에서 소금길은 시작한다. 노란색 점선을 따라 걷자 1번 가로등부터 순서대로 높은 번호가 매겨진 가로등이 나왔다. 이미 사람들이 퇴거한 집은 때로 유리창이 없었고 대문도 떼어져 있었다. 한때 반짝였을 벽화와 낙서는 색이 바랬다. 집 문에 붙어 있는 경고장이 이곳이 재개발 예정 지역이란 걸 알게 한다.
소금길이 서울 골목길 대표 명소로 떠오른 것은 2012년 서울시가 염리동을 범죄 예방 디자인 사업 지역으로 선정하면서부터. 도시의 디자인을 개선하면 범죄가 줄어든다는 학설에 착안했다. 총길이 1.7㎞의 염리동 소금길에 노란색으로 색칠한 69개 가로등이 번호대로 늘어섰다. CCTV와 비상벨이 가로등에 설치됐다. 바닥에 그려진 노란색 점선이 소금길임을 알린다. 한강 마포나루에 소금 배 드나들던 시절 나루터에 소금이 들어오면 인부들이 이 지역 소금 창고로 실어 날랐다고 한다. 염리동(鹽里洞)이란 지명이 그렇게 생겼고 소금길이란 이름도 지명에서 따왔다.
숭문고 정문 근처 북카페 소금나루에서 소금길은 시작한다. 노란색 점선을 따라 걷자 1번 가로등부터 순서대로 높은 번호가 매겨진 가로등이 나왔다. 이미 사람들이 퇴거한 집은 때로 유리창이 없었고 대문도 떼어져 있었다. 한때 반짝였을 벽화와 낙서는 색이 바랬다. 집 문에 붙어 있는 경고장이 이곳이 재개발 예정 지역이란 걸 알게 한다.
소금길이 서울 골목길 대표 명소로 떠오른 것은 2012년 서울시가 염리동을 범죄 예방 디자인 사업 지역으로 선정하면서부터. 도시의 디자인을 개선하면 범죄가 줄어든다는 학설에 착안했다. 총길이 1.7㎞의 염리동 소금길에 노란색으로 색칠한 69개 가로등이 번호대로 늘어섰다. CCTV와 비상벨이 가로등에 설치됐다. 바닥에 그려진 노란색 점선이 소금길임을 알린다. 한강 마포나루에 소금 배 드나들던 시절 나루터에 소금이 들어오면 인부들이 이 지역 소금 창고로 실어 날랐다고 한다. 염리동(鹽里洞)이란 지명이 그렇게 생겼고 소금길이란 이름도 지명에서 따왔다.
재개발이 확정된 염리3구역 소금길을 10분 정도 걸었을까.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이 몇 눈에 띄었다. 대학생 이원형(21)씨는 "서울 시내에서 보기 드문 모습이라 요즘 '출사족' 사이에서 다시
각광받고 있다"고 말했다. '모델과 함께 사진 찍기 좋은 곳'이라는 평이 있다는 것은 진즉 들은 바였다. 태풍이 지나간 듯
유리창이 산산이 부서진 골목, 여기저기 열려 있는 빈집, 뚫린 창 너머로 보이는 실내에서 을씨년스럽기보다는 이국적인 매력을
느낀다는 소리다.
소금길 골목에 있는 3~5층짜리 연립주택은 수십층 고급 아파트가 될 것이고 햇볕도 잘 들지 않는 비좁은 골목은 널따란 길이 될 것이다. 그게 정답이 아니라는 주민 의견도 많았다. '소금나루'에서 만난 이성재 염리동 주민자치위원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보면 쌍문동이 재개발되면서 덕선이네, 정환이네, 동룡이네가 뿔뿔이 흩어지죠. 숭문고 앞으로 들어오는 34번 버스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40년 전부터 살았던 동네가 딱 그렇게 됐으니 남 얘기 같지 않아서 보면서 울컥했습니다. 얼마나 정이 넘쳤는데…"
주민 사랑방 역할을 했던 북카페 소금나루는 재개발 여파로 올해를 끝으로 문을 닫는다. SNS에서 화제였던 식당 '언뜻, 가게' 역시 영업을 종료했다. 이곳은 서서히 지워지고 있다.
◇재개발 멈추자 찾아드는 이색 공간
소금길 골목에 있는 3~5층짜리 연립주택은 수십층 고급 아파트가 될 것이고 햇볕도 잘 들지 않는 비좁은 골목은 널따란 길이 될 것이다. 그게 정답이 아니라는 주민 의견도 많았다. '소금나루'에서 만난 이성재 염리동 주민자치위원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보면 쌍문동이 재개발되면서 덕선이네, 정환이네, 동룡이네가 뿔뿔이 흩어지죠. 숭문고 앞으로 들어오는 34번 버스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40년 전부터 살았던 동네가 딱 그렇게 됐으니 남 얘기 같지 않아서 보면서 울컥했습니다. 얼마나 정이 넘쳤는데…"
주민 사랑방 역할을 했던 북카페 소금나루는 재개발 여파로 올해를 끝으로 문을 닫는다. SNS에서 화제였던 식당 '언뜻, 가게' 역시 영업을 종료했다. 이곳은 서서히 지워지고 있다.
◇재개발 멈추자 찾아드는 이색 공간
노란 가로등을 따라 북쪽으로 이동하면 풍경은 확연히 바뀐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이대역에 가까운 염리동5구역은 주민투표에 따라 2012년 재개발이 취소됐기 때문이다. 소금길 북쪽 절반은 재개발을 피했다는
뜻이다. 덕분에 젊은 감각을 뽐내는 가게들이 하나둘 늘어나는 거리가 됐다. 지난 4월 문을 연 초원서점은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음악 전문 서점이다. '규수방' 상표가 박힌 오래된 장롱에 음악 관련 책이 빼곡하다. 가게 한쪽에는 1990년대 팔았음직한 팝송 카세트테이프가 수십개 놓여 있다.
고무나무, 유칼립투스, 선인장 같은 관엽식물과 다육식물을 전문으로 하는 매장도 들어섰다. 작년 문을 연 공간식물성, 여행책방 일단멈춤이 문을 닫은 자리에 새로 생긴 더플랜트룸이 있다.
걷느라 지쳤다면 카페 머스타드에서 쉬어간다. 지난 4월 오픈했는데 두 살배기 일본 시바견 '도순이'가 귀엽다고 소문나 손님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재개발이 취소되기 전인 2011년부터 카페 나무아래를 운영하고 있는 바리스타 나상조(42)씨는 동네 터줏대감. 올해부터는 아예 통장(염리동3통)을 맡았다. 라테아트 수업, 핸드드립커피 수업을 진행한다. 퇴근길책한잔은 최근 유행인 '북맥(book+맥주)'의 선두 주자다. 책을 읽고 술을 마시고 독서회에도 참여한다. 문 여는 날과 시간이 유동적이다.
걷느라 지쳤다면 카페 머스타드에서 쉬어간다. 지난 4월 오픈했는데 두 살배기 일본 시바견 '도순이'가 귀엽다고 소문나 손님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재개발이 취소되기 전인 2011년부터 카페 나무아래를 운영하고 있는 바리스타 나상조(42)씨는 동네 터줏대감. 올해부터는 아예 통장(염리동3통)을 맡았다. 라테아트 수업, 핸드드립커피 수업을 진행한다. 퇴근길책한잔은 최근 유행인 '북맥(book+맥주)'의 선두 주자다. 책을 읽고 술을 마시고 독서회에도 참여한다. 문 여는 날과 시간이 유동적이다.
동네방네 대흥동 양조장은 1주일 전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 파는
'공덕동막걸리'는 시큼털털에서 털털한 맛을 빼고 시큼함을 상큼함으로 바꾼 맛이다. 하루 600병 한정 생산, 1병(750mL)
1500원. 막걸리 한 잔 마신다. 사라질 것과 남겨진 것 사이에서 느낀 착잡함이 더 달라붙었다.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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