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테이크아웃 카페·24시간 편의점도 없이… 세월을 비껴간 마을



테이크아웃 카페·24시간 편의점도 없이… 세월을 비껴간 마을

  • 양지호 기자
입력 : 2016.09.08 04:00

서울 성북동 '북정마을'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도 24시간 편의점도 없는 서울 성북구 북정마을은 도심 속 비무장지대(DMZ) 같다. 재개발이 수차례 무산되며 1970~80년대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성북동 '북정마을'은 세월을 비껴간 도심 속 비무장지대(DMZ)다. 서울시청에서 직선거리로 3㎞ 떨어진 이곳은 3무(無) 마을이다.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 24시간 편의점, 은행 ATM 기기가 없다. 혜화문과 숙정문을 잇는 한양도성 성곽 아래 가파른 북사면에 있다.

서울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도보로 30분, 마을버스로 10분 거리. 마을 어귀에는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성북동 하면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떠오르지만 이곳은 6·25전쟁 이후부터 저소득층이 살던 마을이다. 1983년 준공했다는 타원형 포장도로를 따라 올망졸망 들어선 500여 채의 기와와 슬레이트 지붕 집들은 1970~1980년대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겨울에 연탄 때는 집도 많다.

마을버스가 지나는 포장도로는 실핏줄 같은 골목길과 만난다.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5분이면 한 바퀴 돌아보는 작은 마을이지만 골목골목 걷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간다. 맘에 쏙 드는 골목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골목 사이사이, 담벼락과 처마 너머로 서울 성곽이 모습을 드러낸다.


  
① 한용운 선생이 살았던 ‘심우장’. ② 북정마을에 있는 유일한 식당 ‘북정카페’. ③ 집 외벽을 전시 공간으로 꾸민 ‘이끼’. ④ ‘살구’에서 작업 중인 작가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성북구 관계자는 "관광객 대상인 신축 한옥마을이 아니라 실제 사람들이 사는 골목 풍경에 일본 관광객이 특히 좋아한다"고 귀띔했다. 이미 유명한 북촌 한옥마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소박함이 있다. 몇 번이나 재개발 계획이 엎어졌기 때문에 지금까지 과거 모습을 간직해올 수 있었다. 2011년 계획했던 한옥마을 조성사업이 시작됐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 마을 유일한 식당인 북정카페의 전(前) 주인(지금은 며느리에게 물려줬다) 고현선(61)씨는 "우리 마을은 문 걸어 잠그는 집 없고, 집마다 숟가락 몇 개인지도 다 알아"라고 말했다.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 주민이 40% 가까이지만 이웃 사이는 시골처럼 정겹다는 이야기. 북정카페 파라솔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5분 사이에 고춧가루를 꾸러 고씨를 찾아온 마을 할머니가 한 분, 내일 택시를 타야 하니 콜택시를 알아봐 달라며 찾아온 할머니가 한 분이었다.

구멍가게 몇 개가 전부, 마을버스(성북 03)를 타고 올라와야 하는 산자락 외진 곳이지만 북정마을의 매력에 빠진 젊은이들도 모여들고 있다. 작년 성신여대입구에서 이곳으로 사무실을 옮긴 신정엽디자인연구소 건축가 신정엽씨는 "조용한 밤에 창문 밖으로 조명을 받은 한양 도성이 시선을 뺏는다"며 "맞은편 집을 리모델링해 젊은 예술인들을 위한 공방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했다. 공방 겸 갤러리 '공간 살구'를 운영하고 있는 이순주 작가는 "홍대 인근을 전전하다가 2년 전 이곳에 왔다"며 "산책하다가 서로 만나 수다 떨 수 있는 시골 같은 분위기가 좋았다"고 했다. 가죽제품 공방, 전시공간 '이끼'도 들어섰다. 외국인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도 곧 오픈 예정이다.


  
마을을 돌아봤다면 북정카페 왼편 '심우장(尋牛莊) 가는 길' 표지판을 따라 50m 쯤 걸어내려간다. 만해 한용운이 만년을 보냈던 집이다. 박수진 성북문화원 향토사연구팀장은 "당시 토지대장을 살펴보면 이곳 외에는 민가가 없었다"며 "지금의 북정마을은 6·25전쟁 이후 1950~1960년대 사람들이 몰려와 살면서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처음으로 북정마을에 터를 잡은 사람은 만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만해는 1933년 지인의 도움을 받아 이곳에 목조 기와집 '심우장'을 지었다. 심우장은 북향(北向)이다. 북사면에 집이 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조선총독부와 등을 지기 위해서' 일부러 그렇게 지었다 한다. 만해는 1944년 입적할 때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심우장에서는 만해를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 '심우'(극단 더늠) 공연을 무료로 하고 있다. 2014년부터 비정기적으로 해왔는데 올해는 9월 24일부터 4주 동안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에 한다.

심우장 가는 길에 '비둘기공원'이 있다. 시인 김광섭의 시 '성북동 비둘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한편에 시가 적혀 있다.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가슴에 금이 갔다···(후략)" 성북동에 살았던 시인은 부자 외부인이 들어오면서 원주민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1960년대에 이미 목격했다.

북정마을이 살기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지난 2년 사이 월세와 집값이 2배 가까이 뛰었다 한다. 비둘기는 또 집을 잃게 될까. 만해가 심었다는 심우장 향나무에 비둘기 한 마리가 앉아 깃털을 고르고 있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어느 선술집 벽에 있는 낙서/일본

일본에 주재원으로 23년 살다온 친구가 12월 초에 일본으로 여행을 갔다가 어느 선술집 벽에 있는 낙서를 사진으로 찍어서 번역해준 건데 웃기면서도 의미가 심장합니다.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두 줄 읽고 웃고, 두 줄 읽고 무릎 치고... 와, 뭔가 조금은 통달한 '꾼'이 끄적거린 거 같습니다. <18 81="">  사랑에 빠(溺)지는 18세  욕탕서 빠(溺)지는 81세  도로를 폭주하는 18세  도로를 역주행하는 81세  마음이 연약한 18세  온뼈가 연약한  81세  두근거림 안멈추는 18세  심장질환 안멈추는 81세  사랑에 숨막히는 18세  떡먹다 숨막히는 81세  수능점수 걱정하는 18세  '혈당/압'치 걱정의 81세 아직 아무것 모르는 18세 벌써 아무것 기억無 81세  자기를 찾겠다는 18세  모두가 자기를 찾고 있는  81세. ———-!———!—— 몸에좋고 인생에 좋은 피자 열판 보내드립니다. 계산은 제가 하겠습니다. 허리피자 가슴피자 어깨피자 얼굴피자 팔다리피자 주름살피자 내형편피자 내인생피자 내팔자피자 웃음꽃피자 오늘부턴 신년까지 늘 웃음과 행복한 일만 가득하세요.**

🌶 고 추 장  🌶

🌶 고 추 장  🌶 고추장에 관해서 특별한 체험이 있다. 뜻하지 않게 갈비뼈가 부러져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의 일이다. 한개도 아니고 열개씩이나 골절되어 꼼짝달싹을 못하고 아편으로 통증을 겨우 견디고 있었다. 그런데 혈압이 올라가고 혈당이 올라가 혼수지경에 이르니 보통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내도 어떻해서든지 날 살려보려고  정성을 다해 음식을 해왔지만 모두가  헛수고일 뿐이었다. 나 또한 집사람을  혼자 살게 만들면 천벌을 받겠기에 열심히 음식을 먹으려 애를 썼지만 구역질만 더 할 뿐이었다. 여행다닐 때 고추장 단지를 꾀차고 다니며 햄버거에 발라먹던 생각이 나서 고추장을 가져다달라고 부탁했다. 고추장을 죽에 넣어 먹으니 신통하게 잘 넘어가는데 그 맛 또한 기가막혀 부글거리는 뱃속까지 편안해졌다. 덕분에 문병오는 사람마다 고추장 단지를 가져오는 바람에  고추장 벼락을 맞을 지경이 되었다. 그 후로는 고추장 단지가 내 식탁에 주인이 되었다.   고추장에 무슨 성분이 들어 있고 무슨  작용을 하는지는 몰라도 신통하기 짝이 없었다. 소태 같던 입맛이 꿀맛이요,  구역질도 잠잠해지고 느글거리던  뱃속까지 고분고분 고추장말을 잘 들으니 과연 고추장의 위력이 대단하다. 내 미국 친구들이 겨울만 되면 단골처럼 감기로 골골대고 있을 때 나는 감기가  뭔지도 모르고 지내고 있다.  그들이 날보고 너는 어떻게 감기 한 번 안걸리냐고 묻는다. 그때마다 "내가  건강한 것은 김치 파워야.  너희들도 김치를 먹어라." 하고  자랑을 했는데 이제는 고추장의 효능이 또 하나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어린 아기를 달랠 때 호랑이 나온다 하면 뚝 그치고, 순사 온다 하면 뚝 그치듯이 뱃속이 앙탈을 부리면 고추장 먹는다  하면 조용해 질 것 같다.  고추는 남미와 아프리카가 원산지란다. 고추의 매운 맛은 알카로이드의 일종인 캡사이신 때문이란다. 이 캡사이신이  자극을 주어 발효작용을 해서 감기 열을 내리기도 하고 위도 자극해서 위액 분비를 촉진해

우리 아버지 마음 (실 화 (實話))

우리 아버지 마음 (실 화 (實話)) " 헤아릴수 없는 아버지의 마음 !" 나의 고향은 경남 산청이다. 지금도 첩첩산중에 상당히 가난한 곳이다. 그런데도 나의 아버지는 가정 형편도 안 되고 머리도 안 되는 나를 대도시 대구로 유학을 보냈다. 나는 대구 중학을 다녔는데 공부가 정말 하기 싫었다. 1학년 8반에서 나의 석차는 68/68, 68명 중에 꼴찌를 했다. 지독하게 부끄러운 성적표를 들고 고향으로 가는 어린 마음에도 그 성적표를 부모님께 내밀 자신이 없었다. 무학의 한을 자식을 통해서 풀고자 했는데, 맨 꼴찌라니...! 끼니도 제대로 못 잇는 소작농을 하면서도 아들을 중학교에 보낼 생각을 한 부모님을 떠올리면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잉크 지우개로 기록된 성적표를 1/68, 1등으로 고쳐 아버지께 보여 드렸다. 아버지는 초등 학교도 못다닌 무학이므로 내가 1등으로 고친 성적표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대구로 유학한 아들이 집으로 왔으니 친지들이 몰려와 말했다. "찬석이가 공부를 잘했더나 ? 아버지가 말했다. "앞으로 두고 봐야제, 이번에는 우짜다가 1등을 했는가배...!" "아들 하나는 잘 뒀구먼, 1등을 했으면 잔치를 해야제!" 그 당시 우리 집은 동네에서도 가장 가난한 집이었다. 이튿날 강에서 멱을 감고 돌아 오니, 아버지는 한 마리 뿐인 우리집 돼지를 잡아 동네사람들 모아 놓고 잔치를 하고 있었다. 그 돼지는 우리 집 재산목록 제 1호였다.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아부지 ~ !" 하고 불렀지만 다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밖으로 달려나갔다. 등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겁이 난 나는 강으로 가서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물속에서 숨을 안 쉬고 버티기도 했고... 주먹으로 내 머리를 쥐어 박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