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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주는 축복 /이한규목사





1. 자유 

 말씀은 자유를 주고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며 권세자들 앞에서도 당당하게 만듭니다(45-46절). 동물은 ‘본능’으로 행동하지만 사람은 ‘선택’으로 행동합니다. 사람은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그 선택이 다 자유를 주지는 않고 잘못 선택하면 노예가 됩니다. 소유가 많고 지위가 높아도 자유가 없다면 불행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축복 중의 하나가 자유입니다.

 자유를 누리려면 육체적인 자유도 필요하지만 정신적인 자유도 필요합니다. 정신적인 자유는 자기와의 싸움에서 얻습니다. 그처럼 자기를 극복하고 참된 자유를 누리려면 바른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지식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잘못 배우면 큰 고통과 근심이 따릅니다. 정신적인 자유를 주지 못하는 배움은 멀리해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결국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바로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8장 32절에서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알지 못하면 무지로 말미암아 잘못된 악습과 미신의 종이 될 때가 많습니다.

2. 소망

 이 시편 기자는 말씀을 통해 자유를 얻게 된 것을 생각하고 말씀을 즐거워하며 가까이하자 하나님께서 소망을 가지게 하셨습니다(47-49절). 말씀은 소망과 확신을 줍니다. 살면서 뭔가를 잃어버리면 마음이 상하지만 하늘의 소망을 잃지 않으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흔들리지 않으면 점차 자유와 행복과 축복이 따라옵니다. 말씀은 힘과 용기와 소망을 주는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와도 같습니다.

 인생의 성패는 밤의 순간을 잘 극복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매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몇째 날이니라.”란 말씀이 반복됩니다. 일반적인 하루 개념은 아침으로 시작하고 저녁으로 끝나지만 성경적인 하루 개념은 저녁으로 시작하고 아침으로 끝납니다. 성도는 저녁의 삶을 아침의 삶으로 만들어내는 사람입니다. 저녁의 삶을 아침의 삶으로 만들어내려면 한밤의 어둠을 통과해야 하는데 말씀은 어둠을 잘 통과하게 하는 소망의 빛이 됩니다.

3. 위로

 이 시편 기자는 말씀이 고난 중의 위로가 되었다고 고백합니다(50절). 또한 교만한 자들이 자신을 심하게 조롱했어도 말씀을 떠나지 않았고 말씀을 기억하면서 조롱의 고통을 당하는 자신을 스스로 위로했습니다(52절). 살다 보면 자신이 왜소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오묘하신 뜻을 이해하지 못할 때는 더욱 스스로 위축됩니다. 그때 말씀의 약속을 생각하면 마음에 큰 위로가 됩니다.

 예레미야 15장 16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말씀이 심령에 스며들면 낙심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기쁨과 즐거움도 신기하게 차오릅니다. 사람은 지극히 왜소한 존재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왜소한 존재가 얼마든지 위대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얼마나 위로가 됩니까?

4. 노래

 이 시편 기자는 분노와 고통 중에 말씀을 묵상하면서 기쁨과 노래를 찾게 되었습니다(53-54절). 사람의 사람됨은 분노를 노래로 만들어내는 것에서 나타납니다. 밤을 잘 견뎌내야 노래하는 아침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시간이란 선물을 의미 있게 만드십시오.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면 하루가 천년 같게 되고 시간을 의미 없게 보내면 천년이 하루 같게 됩니다. 시간을 지혜롭게 쓰는 예술가들이 되십시오. 고난은 현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이 자신 안에 머물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빚의 삶’의 ‘빛의 삶’으로 만들 수 있고 ‘험곡의 해골’을 ‘하늘의 군사’로 만들 수 있습니다. 말씀은 두려워하는 마음의 심지에 불을 붙여 밤하늘에 빛으로 솟구치게 하는 거룩한 폭죽소리와 같습니다. 삶의 방향과 의욕과 용기를 잃을 때 어떻게 그 수렁에서 빠져나옵니까? 말씀을 통해 심령에서 노래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감사의 노래를 회복하면 어떤 환경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입술의 말이 인생을 좌우하듯이 입술의 노래도 인생을 좌우합니다. 기쁜 노래를 부르면 기쁜 인생이 펼쳐집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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