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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는 말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쑥쓰러워서...
자존심 때문에...
습관이 안되어서...
미안한 것을 알면서도 미안하다는 말을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미안하다, 용서해달라는 말을 하지 않음으로 인해
박힌 못을 평생 가슴에 지닌채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얼마나 슬픈 일이겠습니까?

상대방에게 말한마디하면,
그 사람 마음이 풀릴텐데 말입니다.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말한마디 하면,
그 사람 마음이 녹을텐데 말입니다.

그런 말을 못하는 사람을 보면 사람이 나쁜 건 아닙니다.
그런데 미안하다, 용서해달라는 말을 잘 못하는 것입니다.

상처준 사람은 자기가 상처준 것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상처받은 사람은 그 상처가 영 지워지지 않습니다.

가족 관계에서,
친구 관계에서,
교인 관계에서,
상대방이 상처 받았다는 말을 당신에게 해준 적이 있습니까?
그런 아주 귀한 일입니다.

바로 그때...

          “정말 미안합니다. 전 그런 사실을 몰랐습니다.
           하지만 내가 잘못해서 당신에게 상처를 주었다니
           제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앞으로 그런 일이 다신 없도록 노력하겠다는 말과 함께
용서를 구하는 말을 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요.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 했습니다.
아무리 속으로 미안한 생각을 하고 있으면 뭐합니까?
상대방은 신(神)이 아닙니다.
그는/그녀는 당신의 마음속 언어를 읽어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생각을 입밖으로 말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상처는 먼데 사람을 통해서가 아니라
아주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서 받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심지어 무심결에 던진 한마디가 상대방의 가슴에 못을 박습니다.

어느 며느리의 경우,
시부모로부터 평생 지워지지 않는 말을 듣습니다.

          “니가 이 집안에 들어와서 이런 재앙이 왔나보다!
           니가 이 집안에 들어오기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당신 딸이 시댁에 들어가서
그런 말을 듣고 산다면 당신은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시어머니로서, 시아버지로서
집안에 들어온 며느리를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당신이 크리스천이라면...
이것처럼 어처구니 없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문제의 탓을 며느리에게 뒤집어 씌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며느리의 가슴을 휘어 파는지,
그 말의 죽이는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른채 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우리 중 한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여
어느날 무심결에 며느리 앞에서 이같은 말을 한 적이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그런 말을 흘린 적이 있다면...
어느 조용한 시간에 며느리를 불러

          “미안하다, 내가 생각을 잘못해서 그런 말을 했구나.
           나를 용서해다오”

라고 말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미안하다는 말을 해서 당신의 위신이 깎이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를 빌었다고 해서 당신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학교를 다니면서 배운 교훈이 있습니다.
그건 아들과 딸에게 용서를 구하는 아버지가
얼마나 멋진 아버지인지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자녀앞에 권위를 내세울 때 자녀들은 점점 멀어집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자녀에게 잘못한 일이 있을 때,
용서를 비는 그 아버지는...
자녀들로부터 더 존경심을 얻는다는 사실입니다.

이건 며느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용서를 구하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있다는 것이
가슴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말을 아예 안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만은,
사람은 누구나 말에 실수가 있는 법입니다.

깊은 상처를 상대방에게 주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상처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시부모는 훌륭한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것에 대해
용기가 필요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큰 용기를 내십시오.

미안할 정도가 아니라,
용서해 달라고 해야 ...
상대방의 가슴에 박힌 못이 빠질 수 있다면
진정 겸손한 마음으로 용서해달라고 말하십시오.

사과하는 용기!
용서를 구하는 용기!
하나님으로부터 당신에게 이같은 ‘용기의 은혜’ 가 부어지길 빕니다.

한상원목사
솔라그라티아 미니스트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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