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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엔진을 멈출 순 없다 (파리드 자카리아 /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세계화의 엔진을 멈출 순 없다 (파리드 자카리아 /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입력일자: 2015-05-28 (목)  
지난 수십년간 세상을 변화시킨 두 가지 강력한 힘은 세계화의 확장과 정보혁명이었다. 이들 두 가지 강력한 동력은 아시아를 세계화 체제와 디지털 시대에 편입시켰고 삶의 곳곳을 잠식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환태평양동반자협정에 관한 주도적 협상 권한을 주는) 신속처리권한을 허용하는 데 대한 미국 민주당의 반대는 이 같은 시대의 근본적인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것이다. (세계화를 향한) 엔진을 멈출 수는 없다.


▲ 민주당 TPP 반대는 시대 역행적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이 체결되면 미국이 저임금 국가와 경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런 걱정을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역사학자 재커리 캐러벨이 이야기했듯이 우리는 이미 자유무역 시대에 살고 있다. 선진국의 평균 관세율은 현재 약 3%에 불과하며 지난 30년 간 개발도상국들도 관세를 대폭 내렸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중국의 평균 관세율이1985년 40% 안팎이었으나 현재는 10% 미만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1990년대 동유럽과 같은 지역이나 중국 같은 나라들은 세계 경제에 편입됐다. 디지털화된 제품들이 최소 비용으로 국경을 넘나들게 되면서 기술혁명은 세계화를 가속했다. 심지어 택시산업조차 이제는 빅데이터와 스마트폰 앱을 활용하는 우버 같은 기업에 의해 변화하고 있다.

디지털 상품과 서비스가 세계화하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미국 경제는 세계에서 가장 개방됐다. TPP같은 무역협정들은 미국을 개방시킨 것 이상으로 다른 나라의 경제를 열 것이다. 일본과 베트남이 그러했다. 시장을 개방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는 본성은 미국인들의 이상과 이해에 부합한다.

폴 크루그먼 매사추세츠공대 교수는1993년 외교전문 매체 ‘포린 어페어’에 기고한 글에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광대한 미국 경제에 일방적이든 쌍방적이든 큰 영향을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NAFTA는 (경제정책보다) 외교정책의 일환이었다. NAFTA의 경제적 효과는 큰 논란을 샀으나 외교정책 효과는 긍정적이었으며 논란도 일지 않았다.

요즘 우리는 불과 30년 전 멕시코가 전 세계반미성향 국가 중에서도 한층 더 반미적인 나라였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다. 당시 멕시코 정치는 부강한 이웃 나라 미국에 대한 자극적 분노와 질투, 억울함으로 점철됐다. 당시 멕시코 집권당은 좌익혁명 정파 성향을 갖고 있었고 확고하게 미국 정부와 그 외교정책에 맞서곤 했다.

오늘날 멕시코는 확실한 미국의 우방으로 변신했다. 그 나라의 대통령은 과거와 같은 좌파혁명 정파 성향의 집권당 출신이지만 확고하고 공공연하게 친미성향을 보이고 있다. 멕시코는 전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이며 밀접하게 엮인 북미경제권의 핵심 구성원이 됐다. 많은 요인이 이 같은 변화를 이끌어냈지만 NAFTA는 그 중에서도 주된 요인이었다.


▲ 부상하는 중국에 개방으로 대응해야

만약 아시아에서 TPP와 관련해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면 효과는 훨씬 광대할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힘이 부상하고 옛 질서가 쇠퇴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통상과 사이버안보 지적재산권 등을 둘러싸고 새롭게 쓰이는 질서를 놓고 투쟁이 진행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20년이 지난 후 중국이 새 질서를 쓰고 있는 지금을 되돌아보며 당시 기회가 왔을 때 미국이 보다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대응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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