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인생에 늙어감이 없다면 어떨까.
이 우스운 상상을 통해 던지고 싶은 질문은 이것이다. 늙어감은 축복일까, 재앙일까.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점점 더 왕성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는 상상은 적어도 내게는 끔찍하다. 나이는 아흔이 넘었는데 힘자랑을 하고 자신감과 포부를 드러내는 노인들이란 생각만 해도 이상하다.
젊은이에게는 젊은이다움이 있고 늙은이에게는 늙은이다움이 있다. 인간은 부모의 도움 없이는 생존도 불가능한 존재로 태어나 부모의 끊임없는 도움으로 비로소 자생, 자립할 수 있는 존재로 자라난다. 세월이 흐르면 다시 타인에게 의존해야 하는 늙어감을 피할 수 없는 게 인간이다.
언제부터인가 이런 과정이 감사하다고 생각한 순간이 있었다. 늙어감은 인간을 성숙하게 하는 과정이라 그렇다. 인생의 모든 과정이 계속 젊어짐의 연속이라면 거기서 성숙이라는 건 애당초 기대할 수 없다.
자기 힘을 믿고 사는 젊음을 지나 언젠가 피할 수 없이 찾아오는 늙어감은 자기 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방식을 더 이상 고수할 수 없게 한다. 늙어감은 자기의 한계와 약함을 알아가고 낮아지는 과정이다.
늙어가기까지 인간이 겪는 실패와 고난도 적지 않다. 이것들이 조합을 이루어 사람을 만들어간다. 늙어감은 하늘을 찌르던 교만이 낮아지고 자신이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기회다. 자신을 더 알게 되고 자신이 그리 믿을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배운다. 어른은 늙어감의 과정을 통해 이것을 배우는 사람이다.
고집불통의 늙은이가 아니라 어른다운 어른으로 늙어가는 것, 겸손을 늙어감의 미덕으로 드러내는 어른, 젊은이의 실패와 모자람을 여유 있게 웃으며 받아주는 어른 말이다.
성경은 말한다.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시 92:14)".
이런 어른은 입이 아니라 삶으로 말한다. "내 살아보니 하나님은 정직한 분이시더라. 우리는 그분을 속이고 살 수 없다. 한 때 나는 내 힘, 내 노력, 내 지식, 내 학벌, 내 물질로 사는 줄 알았는데 살아보니 그분이 나의 바위가 되셨다는 것을 알겠더라. 젊을 때는 그렇게도 불만과 원망이 많더니 이제 고백하건대 하나님께는 불의하심이 하나도 없더라(시 92:15)".
이런 늙어감은 실로 축복이다. 하지만, 늙어감이 모든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인간의 고집과 교만이 얼마나 억센가. 이들에게는 늙어감이 재앙이다.
성경이 말하는 인생의 전성기는 젊음의 절정이 아니다. 당신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늙어감의 끝이 죽음의 침상이라면 그때가 당신 인생 최고의 전성기다. 실패와 고난 그리고 늙어감의 과정을 통해서 사람은 그 어느 때보다 성숙하고 더 겸손하고, 그리스도를 닮은 어른으로 만들어져 갈 테니 말이다. 그래서 주 안에서 늙어가는 것, 하나님을 경외함을 배우는 늙어감은 축복이다.
haggaikim@hotmail.com
/ 김형익 목사 /죠이선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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