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길 : 설날 아침에---시집 <성탄제>(1969)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 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險難)하고 각박(刻薄)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인간은 미래에 대해 희망과 낙관적인 방향을 기대한다.
새해를 맞는 심정은 금년에 할 과제를 설계하고, 그 과제를 실천하리라는 굳은 의지의 마음을 결심한다. 작년보다는 뜻 있고 희망찬
한 해가 되기를 바라는 새해를 맞이하는 자세는 누구나 같을 것이다. 이 시는 각박하고 험난한 인생살이지만 새해만큼은 밝고
건강하게 맞이하자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던져 주고 있다. 열띤 감정이나 감상에 빠지지 않고, 감정을 절제하며 평범하고 일상적인
소재를 차분한 어조와 간결하고 평이한 시적 표현으로 여유 있고 슬기로운 인생관을 보여 주고 있다. 시적 화자는 세상을 따스하고
착한 눈으로 보고자 한다. 그러므로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 봄날을 꿈꾸듯’, 또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 고운 이빨을 보듯’ 미래 지향적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새해’에 대한 성장과 기쁨을 기대하는 심정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의 모든 표현은 ‘신생(新生)’의 이미지로 나타나 있다. 이와 같은 건실하고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일년내내 유지한다면, 우리는 어떤 매서운 추위도 극복해 갈 수 있고 세상은 살 만한 세상이 될 것이다.
이 시는 신생(新生)의 이미지와 서술적 심상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자세를 노래하고 있다. 따라서 이 시의 성격은 긍정적, 희망적, 달관적이고 미래 지향적이다. 제1단락(제1~4연)은 새해를 맞아 ‘내일’에 대한 삶의 자세를 다짐하고, 제2단락(제5~8연)은 현재의 삶에 대해 성찰하고,.제3단락(제9~11연)은 새해를 맞이하는 희망찬 자세를 노래하는 구성으로 되었다.
“매양 추위 속에 /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에서 ‘추위’는 표면상 겨울의 추위를 뜻하지만, 문맥상 일상생활에서 겪는 시련과 고통, 냉혹한 현실을 의미한다. 시간의 흐름을 보는 시적 화자는 달관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 “새해는 그런 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자세는 모든 괴로움을 인내하고 긍정적이고 희망차게 맞아야 할 일이라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다. 이 시에서 ‘자기 다짐’을 강조하기 위하여 명령법을 사용하여 진술의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 “얼음장 밑에서도 ~ 봄날을 꿈꾸듯”의 ‘얼음장’
은 험난하고 각박한 현실을 암시한다. 그 혹독하게 추운 겨울에 얼음장 밑에서 숨을 쉬어 생명을 유지하는 ‘고기’와 뻘흙 속에 묻혀
봄에 새로 돋아날 것을 꿈꾸는 ‘미나리 싹’을 통해 현실의 괴로움을 인내하고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 바라는 따스한 세상이 오리라는
믿음의 진리를 표현하고 있다. 이 구절은 정지용의 시 <춘설>의 ‘미나리 파릇한 새순 돋고 / 옴짓 아니기던 고기
입이 오물거리는’과 시상이 유사하다.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이할 일이다”는 현실의 시련과 고통에 대한 인내와 미래에 희망을 가지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내용으로, 제2연의 변형된 표현의 구절이다. 설날 아침에 조상께 차례(茶禮)를 지내고 음복(飮服)하는 풍습이 있다. 그러나 ‘찬 술’ 대신 ‘따뜻한 한 잔 술’을 마셨다는 것으로 보아 "오늘 아침
~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을 ‘차례’와 연관 지을 필요는 없겠다. 풍요롭지는 못하지만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따뜻하다고 표현함으로써 소박한 삶을 고맙게 여기고 만족하게 생각하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를 통하여 시적 화자는 설날 아침 받게 되는 소박한 음식을 풍요롭게 받아들이고, 따뜻한 음식으로 설날을 맞게 해 준 식구들에 대해 고맙고 감사하는 심정을 갖게 된다.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은 세상의 본질이 우리 인생에게 고통을 주고 인심도 각박하지만, 그것을 인내하고 극복하여 살 수 있다는 긍정적인 자세를 보여 주고 있다. 시적 화자는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을 오히려 고맙게 받아들이고 그 세상에 대해 슬기롭게 대처하며 노력하겠다는 긍정적인 인생관을 나타내고 있다. “한 살 나이를 ~ 슬기로울 곳을 생각하라”는 한 살 나이를 더 먹는다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현명하고 지혜로워짐을 뜻한다.
한 살 나이를 더 먹어도 옛날과 다름없는 사고방식과 의식 구조를 지니고 있으면 발전이 없는 것이다라고 토로하고 있다. 착하고
슬기롭게 살아감으로써 남에게 모범이 되고 한 가정의 어른으로서 행세하겠다는 것은 새해를 맞이하는 시적 화자의 훌륭한 자세라
하겠다.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 한 해가 가고 / 또 올지라도”에는 되풀이되는 인생에서 고난과 시련이 다시 찾아와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토로하고 있다. 시인은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 고운 이빨을 보듯”을 통해 미래의 희망인 어린것들이 성장하는 모습의 ‘신생’의 이미지로 앞날에 대한 기쁨과 보람을 기대한다.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에서 긍정적이고 희망찬 자세로 새해를 맞이할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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