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록(懺悔錄)---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1948)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이십 사 년(滿二十四年) 일 개월(一個月)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 한다.
—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창작 연월일 : 1942. 1. 24.>
윤동주(尹東柱)는 역사라는 거울에 자기 모습을 비춰 참된 자아의 모습은 무엇이며 자기가 나아갈 올바른 방향이 무엇인가를 모색하려고 한다. 시인은 역사 속의 자아를 성찰(省察)하여 지금까지 식민지 현실 속에서 좌절과 절망 속에 살아온 삶을 스스로 꾸짖고 부끄럽게 여긴다. 그러나 시인은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참회하는 심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의 참된 자아의 모습을 발견하여 자기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 무엇인가를 찾아낸다. 그것은 민족이 현재 처한 고난을 극복하기 위해 자아를 희생하는 데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자기의 참된 모습을 스스로는 볼 수 없어도 역사라는 거울에 후세 사람들이 그것을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이육사(李陸史)의 시 정신과 마찬가지로 자기 희생, 즉 순교자적 자세에서 자기가 바라는 이상 세계가 실현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윤동주의 참된 자아의 모습을 우리는 찾아볼 수 있게 된다.
“참회록(懺悔錄)”은 지나간 잘못을 뉘우치고 고백하는 기록이다. 이 시의 다른 제목을 붙일 수 있다면, 이 시의 성격으로 볼 때 <자화상>이란 제목이 적당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1939년 9월에 <자화상>이란 제목의 시를 쓴 바 있으므로 이 시의 제목을 <참회록>으로 정한 것 같다. “파란 녹”은 오랜 역사의 흐름을 상징하고, 암울한 느낌과 분위기를 나타낸다. “구리거울”은 이 시에서 역사 속의 자아를 성찰하고 응시할 수 있는 매개체의 역할을 한다. “내 얼굴”은 일그러지고 부끄러운 내 모습을 말한다.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遺物)”은 시적 자아인 나 자신을 말한다. “어느 왕조(王朝)의 ~ 욕될까”는 무능한 조상과 치욕의 역사에 대한 반감과 분노를 뜻한다. 조상의 잘못으로 주권도 상실하고, 주권도 없는 나라의 백성으로 태어난 것에 대한 자괴감(自愧感)과 원망이 담겨 있다. “참회(懺悔)의 글”은 지금까지 기쁨 없이 굴욕 속에 살아 온 일에 대한 참회를 말한다. “한 줄”은 참회를 담고 있으므로 부끄러운 ‘한 줄’이 된다. 제3연의 ‘한 줄’은 ‘자랑스런 한 줄’이 된다. “만 이십 사 년(滿二十四年) ~ 살아 왔던가”는 자학적인 참회의 말로, 시적 자아가 놓인 현실의 시점(時點)을 나타낸다. 한편 제3연의 ‘부끄러운 고백’의 내용이 되는 구절이다. “제1~2연”으로 시인이 이 시를 쓴 시대 상황이 일제 치하임을 암시하고 있다. “제3연”은 미래상(未來像)을 제시한 부분으로, 미래의 시점을 설정하여 현재의 뉘우침을 그 미래에서 참회하고 있다. 이것은 현실의 좌절과 절망을 힐책(詰責)한 것이다. “내일이나 모레”는 미래의 그 어느 날을 말한다. “그 어느 즐거운 날”은 밝고 보람된 날, 즉 이상이 실현되는 날로 이 부분은 ‘예언자적 요소’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써야 한다”는 확신과 신념, 그리고 결의가 드러난 표현이다. “그 때”는 모든 이상이 실현된 미래의 시점에서 되돌아보는 현재를 말한다. “밤”은 어두운 현실로, 자기를 반성하고 자아를 찾을 수 있는 명상에 잠길 수 있는 시간을 말한다. 윤동주의 대부분의 시[<서시>, <별 헤는 밤>, <또 다른 고향>, <쉽게 씌어진 시>]들은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손바닥으로 ~ 닦아 보자”는 구리거울의 파란 녹을 제거하여 참된 자아를 찾기 위해서 하는 행위이다. 또한 이것은 현실을 타개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행동에 해당한다. “운석(隕石)”은 고난과 시련의 상황을 상징한다. “홀로 걸어가는”은 고독한 자아의 모습을 보인 것이고, 고고(孤高)의 자세를 나타낸다. “슬픈 사람의 뒷모양”은 거울에 자기 모습을 비취면 앞모습이 비춰 보이지, 뒷모습이 비치지는 않는다. 이 구절은 자기의 참된 모습을 자아는 볼 수 없고 후세 사람이 본다는 것을 뜻한다. 결국 이 구절은 민족을 구출하기 위해 자기 희생을 하는 것이 참된 자아의 모습이라는 것으로, 윤동주의 순교자적 자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 구절과 비슷한 발상(發想)으로 된 이육사의 시 구절로, <광야>의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를 들 수 있는데, 이 구절에서도 남을 위한 자기 희생, 즉 순교자적 자세를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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