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z Xavier Winterhalter (1805-1873)
Franz Xavier Winterhalter (1805-1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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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그 후련한 휴식
주숙녀 수필가해는 뜨고 지고 일상은 여일한 리듬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때로 나날이 낯설어지기도 하고 수없이 걷던 길이 홀연 까마득해지고 어리둥절해 지기도 했다. 무언가 새로운 바람이 불어와서 내 뺨을 철썩 쳐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휴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에서 벗어난 방종의 쾌감을 맛보고 싶었다.
비행기를 타기도 하고 차로 대지를 달리기도 하면서 여름휴가를 보냈다. 수없이 갔던 뉴욕이지만 이번에는 좀 별나게 느껴졌다. 뮤지컬을 즐기는 인구가 극장이 미어터질 만큼이어서 여름의 향연은 들과 바다에만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경마하듯 달리는 차에 몸을 싣고 버지니아를 누비며 여름을 삼키는 듯한 기분을 맛보기도 했다. 마지막에는 코네티컷의 푸른 숲에 압도당하면서 휴가는 절정을 이루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빛깔을 가졌다. 형이상학적인 것이건 형이하학적인 것이건 그 나름의 빛깔이 있다. 녹색이라 해도 그 강도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겠지만 푸른색이라 해두자. 진하고 혁혁한 색, 젊음이 뚝뚝 떨어지는 색, 하늘을 향하여 치솟은 나무 숲속에 눈을 감고 앉아있으면 침묵 속에 갇혀 있던 수많은 밀어들이 사르르 부는 바람에 깨어나 나를 휘어 감았다. 차고 넘치는 축복이었다.
일상으로부터의 해방이니 그것은 축제여야 한다. 방안에 갇힌 통조림 축제가 아니라 이색적인 이방의 축제였다. 풋풋한 삶의 편린이 초록에 휩싸이고 있는 듯한 신비함, 빽빽한 수목 위에 거침없이 발산되고 있는 여름의 정기. 일상에서의 당혹, 흔들림, 피로, 답답함 같은 것이 그 열기에 스르르 녹고 있었다.
여름의 강렬함이 있음으로써 가랑잎 소리를 기억하게 하는 가을이 있고, 폭설이 퍼붓고 칼바람이 불면 따뜻한 방에서 꿈을 꾸듯 봄을 기다리는 겨울이 있다. 씨앗에서 싹을 틔운 식물이 자라는 계절, 작가가 그 언제던가 뿌려두었던 씨앗이 있었다면 이 여름의 풀처럼 지금 어디서 자라고 있을 것이다.
7월의 힘찬 호흡은 시시로 쏟아지는 바람과 더불어 그간에 쌓인 먼지들을 훌훌 날려 보내주었다. 나는 이 계절을 사뿐히 날아서, 새로운 땅에 착지하듯 새로워져야한다.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이 얽히고 겹쳐지는 가운데 자연이 시사하는 어마어마한 의미를 받아드릴 수 있었다.
숲속의 집 뒷 정원 수영장 가에서 폭풍의 내부처럼 고요한 여름의 대낮에 내가 나에게 수 없는 이야기를 했다. 자기와의 이야기는 정직하다. 때로는 이것과 저것 때문에 나와 나가 싸운다. 결과는 언제나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끝이 난다.
귀가하는 비행기 안에서 유리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가늠할 길 없는 단절, 보이다 지워지고 보이지 않아도 거기 있을 것 같은, 유유하기만 한 구름더미의 이동, 자연은 저렇게 편안한 것인가. 저토록 불가사의한 것인가?자연은 나를 다스리고 스스로를 가다듬게 한다. 저 망망함 속에 진리를 심었구나. 지평선일 수도 없고, 수평선일 수도 없는 가로선 하나가 진저리치도록 맑고 파란 하늘 저편 끝에 길게 그려져 있었다. 그런 선의 이름을 들어본 일이 없으니 허공선이라 이를까? 나의 상승이 과분해서 내 발 아래 떠도는 구름에게 부끄러워지기까지 했다.
인류의 과학발달 과정에 티끌만한 공로도 없는 내가 하늘 높이 떠서 분에 넘치는 호사를 하며 하늘과 구름과 태양빛의 어우름을 보면서 휴식으로 얻은 것이 얼마나 큰 지를 가슴 뿌듯하게 감지했다.
여행은 짧지만 귀중한 내 인생의 한 부분이다. 동시에 삶의 연장이며 들뜸이 있는 휴식이다. 세차게 울리는 종소리 같은 격정 어린 여름의 정취를 실컷 즐기고 돌아왔다. 후련한 휴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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