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기 전에 인간에게 최소한 열 달을 준비하게 하는 신은 죽을 때는 아무 준비도 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삶 전체가 죽음에 대한 준비라고 성인들이 일찍이 말했던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생각하는 인간은 분명 어떻게 살 것인가를 안다.
죽음이 삶을 결정하고 거꾸로 삶의 과정이 죽음을 평가하게 한다면 내 삶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하는 수 없이 그런 질문에도 직면하게 되었는데,
그때는 그저 이 모든 것을 신에대한 원망으로 돌리고 싶었다.
그것이 훨씬 수월한 일이니까.
문제는 그렇게 책임을 신에게 돌려버림 으로써 실은 나는 '성장할 기회'를 놓치고 있었다.
- 공지영의 《높고 푸른 사다리》 중에서 -
'삶 전체'가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이라면..
조금이나마, 나의 죽음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내 삶에게 열심히여야 겠구나..
'어떻게 죽을 것'인가 생각하는 인간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안다...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이며, 또한 어떻게 살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어쩌면, 너무도 작다는, 당연하다는 이유로 삶 자체를 놓아 흘려보내지는 않았는지..
인생을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것..그리고 아름다운 죽음을 예비하는것..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우리는 한 뼘씩 성장하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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