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의 石窟은 세계적으로 유명한데 그 중에도 彩色 된 重慶 大足石刻을 제외한 雲崗石窟 龍門石窟
敦煌 莫古窟은 중국 3대 석굴로 보는이로 하여금 신비감을 자아낸다. 나는 금년 3월에 同學知己들
과 더불어 中原文化를 探訪하여 洛陽에 있는 龍門石窟은 가 보았다. 실로 중국인들은 대단한 민족이다. 스케일이 우리와는 다르다.
慶州 吐含山 중턱에 있는 우리나라 石窟庵이 용문동굴을 보며 자꾸만 떠 올랐다. 우리의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예술성과 이들의 雄渾함과 壯嚴한 때문만은 아닌 그 무엇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當代에 金大成이란 한 사람의 거장이 축조한 석굴암과 數百年에 걸쳐 만들어낸 중국의 석굴
과 차이가 아닐까 하는 내 나름대로의 생각이다. 중국의 석굴중 꼭 어느 한 곳은 가 봐야야 불교
문화의 眞髓를 터득할 것으로 믿어지지 때문이다.
中國 四大石窟
1) 雲崗 石窟 (山西省) 中國文化遺産 (2001年 指定)
산서성(山西省) 대동(大同) 서쪽 15km, 무주강(武州江) 북안에 있는 사암(砂岩)의 낭떠러지에
조영(造營)된 중국에서 가장 큰 석굴사원. 전체길이는 동서로 약 1km에 이르며 석굴의 총수는
42개이다. 南北朝時代 북위(北魏)의 역사서 에 따르면, 460년대 초에 조영된 것이라한다.
이 석굴은 北魏의 文化史的 遺産일 뿐만 아니라 中國을 중심으로 한 西北 印度·中央 아시아와
의 문화적 교류 및 韓國과 日本의 佛敎文化(大乘佛敎)를 만들어낸 아시아 문화 생성의 자취를
입증해 주는 중요한 유구(遺構)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이 자랑하는 문화유산의 寶庫라고 한다.
운강석굴 全景. 뒤에 보이는 암반 속에 석굴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
동굴 안으로 들어가 여러 형태로 조각된 불상을 보며 놀라게 된다.
거대한 암벽에 연달아 築造한 寺刹 (懸垂寺刹)은 驚異롭기만 하다.
입구는 암벽 앞이나 들어가면 암벽을 파고 깊숙히 들어가
엄청난 규모의 불상의 조각이 불교문화의 극치를 이룬다.
빙둘려 있는 거대한 坐型의 佛像과 佛經에 있는 內容을 조각으로
표현하고있다. 관람객과 불상을 비교해 보면 그 크기를 알만하다.
自然石인 거대한 巖壁에 窟을 파고 이런 큰 佛像과 양편에 侍立해 있는 불상을 조각했다.
파놓은 窟 속에는 여러 형태의 佛像이 조각되어 있어 대단함을 보여 준다.
다.
이 통로도 암반을 깎아 낸 길이다.
이 길을 따라 通路로 올라가는데 가면서 쳐다보면 고개가 절로 뒤로 제켜진다.
도대체 이 바위덩이(巖塊)는 얼마나 커서 이런 어마어마한 石屈을 만들고 석굴마다
불상을 새기고 벽면에도 수많은 佛者들을 조각해 놓았으니 상상을 초월한다.
석굴 내부 불상과는 다르게 밖에 있는 불상는 층층이 다른 모양이다.
암벽 밖에는 3층으로 층마다 불상 형태가 각기 다르다.
洛陽 龍門石窟 中國文化遺産 (2000年 指定)
중국 4대 석굴중의 하나. 낙양(洛陽) 남쪽 약 14km 지점에 있다.
석굴이 있는 이궐산(伊闕山)은 이하(伊河)를 사이에 두고 서산(西山)과 동산(東山)으로
갈라지며, 석회암의 암벽에 다수의 크고 작은 동굴을 뚫어놓았는데, 동굴 안에는
저마다 엄청난 수의 불상이 새겨져 있다. 석굴은 북위(北魏)때 만들기 시작하여
수(隋)·당(唐)으로 이어지고 송(宋)나라에서 끝났으나, 그 주요 부분은 5세기 말에서
7세기 후반에 이르는 불교미술의 전성기에 조영(造營)되었다.
용문 석굴 표지석 이 바위도 무척 크다.
낙양의 용문 석굴은 산 중턱을 깎아 만들 것으로 원근을 불문하고 그 장엄함에 놀랜다.
앞에는 강이 흐르고 뒤에는 석회암벽이라 자연굴과 인공굴로 멀리서보면 벌집 구멍같이 보인다.
여기도 운강석굴처럼 암벽을 파고 석굴형식인데 불상의 모습이 분위기가 다르며
계단을 통해 오르게 되어 통로로 된 운강석굴과는 다르다.
가까이서 본 용문동굴
멀리서 본 용문 동굴
2층 계단에 오르면 인자한 모습의 불상이 중앙에 좌정해 있고 뒤로 양편에 보살들이 있다.
바로 앞에서 본 부처님 상. 규모가 대단하다. 관람객의 머리가 재켜진다.
雜鬼의 범접을 막는 羅漢들.
계단을 오르내리며 구경하는데 중국인 특유의 절벽에 길을 내는 棧道 재주는 뛰어나다.
이 길 오른쪽 끝에 오르는 계단이 있다. 그 계단을 통하여 오르게 된다.
계단에 오르면 입구에 나한들이 俗世의 不正함을 방지하는 모습인데 석회암 암벽을
이용한 조각술과 그규모의 방대함과 정밀한 예술성이 감탄할만하다.
중국인들은 한번 시작했다고 하면 대단한 공사로 오랜 시일을 두고 만들어 낸다.
보고 또 보아도 대단하기만하다. 어허 장궤놈들 워매 찡한 놈들.
우리들은 와서 봉께 놀랍고 신기하지만 이걸 만들면서 얼마나 고생했을까.
그들은 내가 못하면 아들이 하고 그얘도 못하면 손자가 하고 걔도 못하면
그애 아들이 하면 된다니께. 세월이 좀 먹나. 만만디를 몰라서 그래.
천천히 해도 언젠가는 된다는 것이 중국인들의 마음이라고 한다.
中國 重慶 大足石刻 文化遺産 1999年 指定
重慶시에서 81㎞ 떨어져 있는 大足石刻은 초당(初唐)부터 지어지기 시작하여
오대(五代)를 지나 양송(兩宋)대에 이르러 완성되었다. 선명한 민족화, 세속화,
지방화된 특색을 갖고 있어서 석각은 사료 등으로도 많이 운용되며, 唐 宋 시기의
석굴 예술의 풍격과 민간 종교신앙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9세기 말부터 13세기 중엽까지 세계 석굴 예술상에 가장 휘황찬란한 작품으로
높이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이곳 불상은 채색이 특색이고 서역의 영향으로 인자함 보다는 용맹한 모습이다.
그래도 3-4 면의 인자한 불상도 있다.
호위무사 격인 나한들이 모습이 용감해 보인다. 이곳 조각의 특징이다.
암벽을 타고 내려오는 원숭이가 서유기 냄새를 풍긴다 (대승불교의 영향을 감지케한다)
관람객을 맞이하는 부처님의 모습이 자애롭다. 그위에 불상은 극락에 오른 서방쟁토
주위의 벽에는 수많은 龍머리와 거북이 머리로 영험과 장수를 상징한다.
내벽에는 현란한 색채로 단장한 불상들을 보게 된다.
열반한 高僧들의 사리를 안치한 탑을 들고 있다.
채색이 호화로워 아름답다.
敦煌 莫高窟 文化遺産 1987年 指定
속칭 천불동(千佛洞)이라고 하는데 감숙성 하서주랑(河西走廊) 서쪽, 돈황시 동남쪽에
자리잡고 있고, 명사산(鸣沙山) 동쪽 산기슭의 50여미터되는 높은 절벽에 층층의 동굴로
배열되어 있다. 실크로드의 전략적 요점에 위치해 있으며 동서방 무역의 중개점이며 종교,
문화와 지식이 융합된 곳이다. 막고굴 492개의 석굴과 조각상, 벽화는 현재 세계에서 규모
가 가장 크고 보존이 제일 완벽한 불교 예술 보물창고이다. 용문석굴.운강석굴과 더불어
중국 불교 3대 석굴중의 하나이다. 서기로 128년부터 개착하기 시작한 돈황막고굴은
용문석굴보다 128년, 운강석굴보다 94년 앞섰다.
돈황은 교통요지로 비단길의 중요지점이라 서양의 요소를 많이 가미한 것이 막고굴의 특징이다.
막고굴의 전경.
중앙아시아의 건조지역임을 알려주듯 모래가 많은 매마른 경관이 돋보인다.
중국 석굴의 특징인 2층 3층의 구조와 잔도로 연결하는 형태다.
막고굴은 입구에서 부터 현대식 감각이 물씬 풍긴다.
주변은 황량한 모래산으로 둘려쌓여 있다.
옆에서 본 막고굴의 위용. 역시 현대적인 느낌을 지울수 없다.
중심부는 건조에 대처하는 형식이고 주변부는 건조지역의 실상 그대로다.
입구는 현대식이나 내부에 들어가면 천고의 비밀을 간직한 듯 고대의 불경이 무진장 하다.
우리나라 新羅의 求法僧 慧超의 往五天竺國傳도 이 지역에서 발굴 된것이다.
거대한 臥佛(누워있는 불상)이 주목을 끈다.
돈황을 나타내는 표석인데 여기서부터 끝없는 사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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