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황혼기를 주님께 드리다.
◈1981년 가을 무렵,
아무 연락도 없이 한경직 목사님께서 병원으로 찾아오셨다.
“어쩐 일로 이렇게 갑자기 오셨습니까?”
목사님께 여쭈니 미국의 선교단체인 월드컨선World Concern의 지부가 한국외항선교회에 생겼는데 네팔에 갈 선교사 의사를 물색 중이라 내 생각이 나서 찾아오셨다는 것이다.
거실에서 기도를 하신 후 한 목사님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으셨다.
“강 장로, 지금도 선교사로 가고 싶소?”
주저할 것도 없이 나는 “예”라고 분명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해 겨울, 나는 선교사로 헌신할 것을 교회에 정식으로 통보했다. 한 목사님께는 가겠다고 했는데, 아내하고는 결정이 안 난 상태였다.
“강 장로, 지금도 선교사로 가고 싶소?”
주저할 것도 없이 나는 “예”라고 분명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해 겨울, 나는 선교사로 헌신할 것을 교회에 정식으로 통보했다. 한 목사님께는 가겠다고 했는데, 아내하고는 결정이 안 난 상태였다.
당시 개원한 지 11년이 흐르고 그야말로 병원은 환자가
밀려서 숨 쉴 틈이 없는 지경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있었고, 연로하신 부모님 두 분 모두 살아 계셨다. 특히
아버지는 노환으로 아프시기까지 했다. 선교사로 가겠다는 내 말에 의사가 되기를 권했던 아버님은 말없이 많은 눈물을 흘리셨다.
나를 설득할 수 없다고 느끼자 아내는 내게 애원했다.
“우리도 그냥 보통 사람들처럼 살 수 없어요?”
“우리도 그냥 보통 사람들처럼 살 수 없어요?”
나는 아내의 말에 적잖이 당황했다.
‘그렇다면 나는 보통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
며칠 동안 기도하고 생각했다. 결론은 나는 보통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예수님을 믿고, 성경 말씀을 따르는 보통의 크리스천이었다. 나는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 생선의 가운데 토막
같은 인생을 하나님께 드리고 싶다고 아내를 다시 설득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인도하시면 사람의 계획대로 되는 일은 없다.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확실하고, 그런 후에 기도했다면 갈 길은 밝히 보인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내 등을 떠밀면서 “이리 가시오, 저리 가시오”
했다면 오히려 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기도 가운데 인도하심을 따라 결단하고 헌신했기에 나는 행복했다. 어려울수록 오히려
감사하게 되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의료 선교사로 살아온 지난 30년 가까운 세월을 돌아보니 오직 성령님의 역사만 보인다. 그동안 사역한 곳들이 의약품과 의료 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오지였기에 상식적인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무수히 벌어졌다.
그때마다 선교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는 고백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한 것이 있다면 작은 믿음을 고백하고, 인생의 한 부분을 내어드렸을 뿐이다. 흔히
선교사는 특별한 부르심, 즉 소명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나는 소명을 조금 일반화시켜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소명은 특별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받는 것이다. 예수님이 사람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속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초청하신 사실이 바로 소명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복음에 반응하는 것, 구원으로의 초청에 반응하는 것이 소명에
반응하는 것이다. 나는 예수님을 믿으면 기본적으로 누구나 소명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 소명에 우리가 반응할 수 있는 까닭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 소명에 응답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이 부르실 그날까지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는 삶을 살기를 소원한다. 나는 쉰 살을 바라보는 나이에 부르심에 순종한 이후 여든을 바라보는 지금도 일하고 있다.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선교는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과 그 일을 이루시는 그분을 믿는 믿음 하나만으로 충분하다.
- 히말라야 슈바이처, 강원희
Immanuel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