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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1 Thru 4







아침 북소리, 귓가에 전율을 일으킨다.

이슬도 아직 마르지 않았는데 나는 일손을 멈추고 정오의 종소리를 센다.

그리고 곧 울려 올 저녁 호포(號砲)를 예감하며 또 한 번 손가락에 전율을 느낀다

(루이스 스티븐슨) 등 뒤에 언제나 들리는 소리, 시간이란 날개를 가진 전차(戰車)소리,

그리고 앞에 보이는 것은 황막(荒漠)한 사막(沙漠) 영원이라 부르는 광야. (앤드류 메벨)


“내일이며 늦으리”란 말은 모든 인간에게 적용된다. 확실한 나의 시간은 오늘뿐이다.

오늘은 지루하였지만 내일은 신날 것이라는 보장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지금’을 허비하고 ‘내일’을 값있게 만들 보장은 없다.

나에게 허락된 이 제한된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보물이다.

돈도 돌아올 수 있고 재산도 돌아올 수 있으나 시간은 절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 그것이 바로 시간이다.


시간은 기다리는 자에게는 너무나 느리다.시간은 두려워하는 자에게는 너무나 빠르다.

시간은 슬퍼하는 자에게는 너무나 길다.시간은 신나지 않은 자에게 너무나 지루하다.

그러나 시간은 주님과 함께 살고, 주님과 함께 쓰는 자에게는 한 알 한 알의 귀중한 보석과 같다.

차이코프스키는 죽기 서너 시간 전에 이런 말을 했다.“나는 과거를 후회한다.

현재를 싫어한다. 미래에 희망을 둔다.”이런 생애는 하나의 비극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과거를 후회하고 현재를 염오(厭惡)하는 인간이 품을 수 있는 막연한 기대이기 때문이다.

나는 젊어서부터 ‘오늘’을 중요시하는 개인적인 철학을 갖고 살아 왔다.

지나간 시간은 이미 죽은 나이고 앞으로 올 시간이라 알 수 없는 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나는 루소와 에디슨의 이야기를 읽으며 공감의 박수를 보냈었다.

루소는 시계를 던져 버리고 “이제 내 시간을 갖게 되었다.”라고 외쳤다.

에디슨은 젊은 학생들에게 “시계를 보지 말라.”라고 권고했다.

두 사람은 모두 현재를 중요하게 여겼다.

과거에서 미래를 향하여 흘러가는 삶이 아니라 지금이라는 시점에 확실히 서 있는 순간이

가장 정확한 나이기 때문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오늘이란

하루는 내일의 이틀 분의 가치가 있다.”라고 말했다.


시간 2


옛날에는, 젊었을 때는 시간이 느리게 가고 늙을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들 했지만

요즈음은 젊은 사람들도 곧잘 시간이 빨리 간다고 말한다.

스피드는 쾌감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고민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사실 세월은 너무 빨리 가는 것 같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어떤 사람이 와서 “8만 6천 4백 달러를 주겠으니

오늘 하루 사이에 잘 써 보라.”고 한다면

우리는 우선 계획을 세우기 위하여 많은 생각을 할 것이다.

이러한 일은 우리에게 날마다 일어나고 있다.

하루는 8만 6천 4백 초인데 그것은 달러보다 훨씬 값지다.

돈은 예금이 가능하지만 시간은 저축이 안 된다.

돈의 손실은 회복이 가능하지만 시간의 손실은 복구 불가능이다.

파산을 하면 다음 사업을 위한 교훈이라도 남지만 시간의 파산은 재생 가능성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1초는 1달러보다 훨씬 값지다. “시간은 돈이다.”라는 옛 격언이 있지만,

어림 없는 소리다. 시간은 돈 따위에 도저히 비교될 수 없다.


걸리버가 난쟁이 나라에 있을 때 난쟁이 학자들이 임금에게 조사내용을 보고한다.

“거인의 주머니 속에서 얼굴에 팔이 달린 괴물을 발견했는데(시계),

계속해서 거인과 연락을 취하고 있는 것을 보니(똑딱거리는 시계 소리)

틀림없이 거인의 하나님이라고 생각됩니다.”


작가가 여기에서 ‘계속적으로 관심이 연결된 대상’과 시간의 주관자를

신으로 해석한 것은 깊이 있는 사색으로 보여진다.

복역중인 죄수에게 시간은 단순히 기다림이다.

그러나 자유인에게 시간은 순간마다 심판이다.


시간이란 늙어 갈수록 빨라진다.

그것은 시간의 중요성을 늙어 갈수록 더 인식하게 된다는 의미다.

인간이 어려서 웃고 울기만 할 때 시간은 갓난아이처럼 기어간다.

청년이 되어 꿈을 꾸고 힘차게 발언할 때 시간은 젊은이같이 활보한다.

그리고 성숙한 장년이 되면 시간은 달려가기 시작한다.

그 후 잠깐만에 백발이 나오고 주름살이 깊어지면 기어가던 시간도

활보하던 시간도, 달려가던 시간도, 다 자취를 감추고

이제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시간은 귀중하다.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은 저축도 안 된다.

은행은 현찰이나 수표는 받지만 시간은 받지 않는다.

시간은 자손에게 물려 줄 수도 없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시간을 살 수 있는 백화점은 없다.

운동경기에서는 작전을 세우기 위하여 타임아웃(time out)을 불러

시간의 진행을 중단시킬 수 있지만 인생 경기장에서는 타임아웃이 없다.

시간은 택시의 미터기 같아서 타고 있는 사람의 사정과는 아무 관계없이 계속 가버린다.


시간처럼 인간의 감정과 행복과 불행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은 없다.

인간은 때로는 시간을 저주하고 때로는 시간을 갈망한다.

그리고 시간을 지겹다고 하고 때로는 시간 가는 것을 몹시 아쉬워한다.

시간은 내 편이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원수가 된다.

“세월은 잘 간다-.”하고 성악가 며느리가 노래하니까 “나보고 빨리 죽으라는 거지!”

하고 화낸 시어머니가 있었다고 한다. 이 경우, 한 사람에게는 시간이

즐거운 노래의 주제가 되었고 다른 사람에게는 공포의 망령이 되고 있다.


시간 3


시간에는 세 종류가 있다 . 하나는 달력상의 시간(calendar time)이다.

이것은 천문학적 시간으로서 지구의 회전과 태양과 관계된 것이다.

해가 뜨고 해가 짐으로 결정되는 시간이다.

둘째는 생물학적 시간(biological time)이 있다.

이것은 모든 생물 속에 부착되어 있는 시간 (built-in time)이다.

기러기가 옮겨가고 연어가 이동하여 알을 까고 사람이 낳고 죽고 하는 시간이다.


달력의 시간을 ‘남의 시간’이라고 한다면 생물학적 시간은 ‘나의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시간에는 이것들과는 다른 종류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시간이다.

나의 시간이 제한된 데 비하여 하나님의 시간은 제한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다. 보통 ‘구원’이라고 말하는 것은

나의 시간에서 하나님의 시간으로 옮겨가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의 시간을 산다는 것은 나의 세계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이는 물론 시간 생활을 무시하라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시계에 나의 인생을 맞추어,

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 우선순위를 생각하여 시간을 쓰라는 뜻이다.


뉴욕 퀸즈에 있는 브로바(Bulova) 시계 공장에 도둑이 지붕을 뚫고 들어가

25만 달러 어치의 시계를 훔쳐 갔다. 그런데 경찰 보고에 의하면

새벽에 이 사실을 발견한 회사원이 경찰에 신고할 때 너무 급해서

시계를 훔쳐갔다는 말 대신 시간을 훔쳐갔다고 신고했다고 한다.


사실 25만 달러를 도난당하는 것보다 시간을 도둑맞는 것이 훨씬 더 타격이 크다.

시간은 회수가 안 되기 때문이다. 12월이 되면 시간의 빠름을 새삼스럽게 느끼며

필요 적절하게 잘 쓴 시간과, 허비나 낭비를 했던 지난 해의 시간들을 되새기게 된다.

실패를 정의하는 한 마디가 있는데 그것은 ‘시간이 없었다’는 말이다.

이는 시간이 없어서 해야 할 일, 갖추어야 할 준비를 못하여 실패하였다는 뜻인데,

사실은 시간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시간 사용에 있어서 그 우선순위가 달랐을 뿐이다.

누구에게나 24시간이라는 같은 양의 시간이 주어진다.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여 그 시간들을 분배하느냐에 따라

후회와 만족, 실패와 성공이 결정된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시간은 언제나 그의 친구가 된다. 왜냐하면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셨기 때문이다. 내일이라는 미래의 시간 속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는

알 길이 없어도 내일을 하나님께서 붙잡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 자는 알고 있다.




시간 4

시간 가는 것이 빠르다고 느끼는 사람은 이제 인생을 알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이 몹시 귀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제 인생의 가치를 터득하기 시작한 것이다.

안일한 생활태도는 시간을 지겹게 만든다. 부지런한 생활이 시간을 버는 길이다.

만일 생명을 사랑한다면 시간을 아껴야 한다. 왜냐 하면 시간은 생명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그저 존재하고, 어떤 이는 보람 있는 삶을 산다.

이 차이는 단순히 허비한 시간과 활용한 시간의 차이일 뿐이다.



/펌 (귀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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