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서울만 가면 되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교인들에게 전도해야
할지 모르는 시대가 온듯하다.
그만큼 교회 안에 불신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교회를 믿다가 교회를 그만두는 사람들
사람을 믿다가 사람에게 실망하는 사람들,
목회자를 믿다가 목회자를
대적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그 이유를, 주를 향한
기본적인 믿음의 결여라고 믿는다.
심방하다 보면 시험에 들어
있는 교우들을 만나게 된다.
그때마다 옆에 동행하던
집사님들이 하시는 말이 동일하다.
"목사님, 이분이 옛날에는
믿음이 엄청났습니다.
기도도 많이 하구요. 그런데 지금은
그 시험에 들어 이런 것입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켠이 씁쓸하다.
왜냐하면, 본래 그 분이 믿음이
대단하다가 시험에 들어,
믿음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아예, 믿음이 없었던
것에 가까운 것이다.
다만 믿음 비슷한 것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은 그렇게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에는 믿음을 정금 같다고 했다.
순금은 변하지 않는다.
진흙에 파묻어 두어도 금이고
망치로 두둘겨도 금이다.
한결같은 믿음의 소유자가 그리 많지 않다.
우리는 요즈음..슬프게도,
교인들에게 예수를 믿습니까?
라고 확인하고 물어야 할 것 같다.
예수를 바로... 제대로.. 믿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교회에 열심을 낼 수 있고,
경건의 모양을 갖출 수 있다는데,
위장된 믿음의 함정이 있다.
비슷한 것과, 같은 것은 다르다.
비슷한 믿음이라고, 진짜 믿음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 안에 열심이 있기는 하지만,
열심 자체가 믿음은 아니다.
왜 열심인가? 열심의 뿌리가 어디인가?
는 더욱 중요하다.
영적 센스가 믿음도 아니다.
영적지식이나 영적 용어를 사용함이
믿음도 아니며 영적인 것을
사모함도 믿음의 본질은 아니다.
물론 신령한 체험이 믿음도 아니다.
형통이 믿음도 아니며,
기복이나 형통함이 믿음은 더더욱 아니다.
믿음은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며,
그분을 위하여 죽는 것이다.
이러므로 예수는 살라고 믿는 것이 아니라,
죽으라고 믿어야 변질이 없다.
살라고 믿기에, 못살게 되면
믿음의 갈등과 낙심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에 대하여 죽고, 사람에 대하여 죽고,
과거에 대하여 죽고 고통에 대하여 죽고,
원수에 대하여 죽고,지금 우리의 사회는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캠페인으로 가득하다.
우리나라는 엄청난 경제발전과 부를 축적하며
경제대국을 이루어 가고 있다.
모자람이 없으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부정과 부패 그리고 상식이
통하지 않으며 아직도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통하는 나라이다.
운전을 하다 보면 정말 기본을 안 지킨다.
우리나라의 교통사망 사고율이
세계 최고라고 들었다.
그런데 교통사고의 원인의 대부분이
신호위반이며 횡단보도에서 발생한다.
다시 말하면 기본을 안 지킨다는 뜻이다.
기본만 지켰어도 사망자의
수를 상당히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 교회에도 성도들에게도
기본으로 돌아가는 일이 필요하다.
어릴 적부터 믿음도, 주를 향한 열심도,
엄청만 헌금과 헌신도, 금식과 기도도
중요하지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기본을 갖추는 것이다. 기본이 뭔가?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를 내 구주로 믿고,
그분을 따라 가는 것이다.
이 기본이 안 되었기에 범사가 삐걱거리는 것이다.
시험에 드는 것도, 상처 받는 것도,
약속을 안 지키는 것도, 열심을 내지 않는 것도,
교회를 사랑하지 않음도, 믿음이 없기에 그렇다.
건축을 할 때 기초를 제대로 쌓지 않으면
아무리 높이 아름답게 쌓아도
그 건물은 부실공사로 무너지고 말 것이다.
믿음이 없으면 어떤 신앙의 행위도, 위선이며 포장이며 가식이 되어 버린다. 언젠가는 믿음의 부실이 생기게 마련이다. 왜? 사람보고 실망하는가?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왜? 교회 때문에 상처를 받는가?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가나안 여인을 보라. 주님이 무엇이라고 말하든, 제자들이 어떻게 말하든 그 여인은 상처를 안 받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할 때 바울 나름대로는 하나님의 대한 열심 때문이었다고 했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하며 씨름하여야 할 것이다. 교회를 믿는 사람들 사람을 믿는 사람들 기복을 믿는 사람들은 이제 예수를 믿어야 할 것
것이다.
요한복음에 보면 제자들이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라고 물었을 때 주님의 대답은 간단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셨다. 사도행전18장에 보면 아볼로라는 분이 나오는데 이 분은 믿음이 없으면서도... 성령세례를 모르면서도... 성경에 능하고, 성경을 가르치고, 열심이 충만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성가대도 하고, 주일학교 반사도 하고, 예배도 빠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분은 기본이 안 되었다. 믿음이 없었으며, 성령세례를 몰랐던 것이다. 아무리 급하고 바빠도 기초 없이 건물을 지을 수 없듯이 우리도 이와 같이 믿음의 기초가 없으면 모든 면에 부실이 생기고 균열이 생기게 마련이다. 결국은 무너진다. 교회가 문제가 아니다. 환경이 문제도 아니다. 사람이 문제도 아니다. 목회자도 그리 큰 문제도 아니다. 나의 믿음 없음이 문제이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나의 믿음 없음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믿음 있다고.. 믿음 좋다고 착각하며 사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풍랑일고 태풍불면, 뿌리 없는 작은 나무는 뽑혀 버리듯이 반드시 이해득실의 문제에서 해가 되거나, 주님으로 인하여 떡이나.. 기적이 안 생기면, 믿음의 뿌리는 송두리채로 뽑혀 버린다. 믿음은 그렇게 시시한 것이 아니다. 세상 사랑도, 불이 태우지 못하며 물이 침몰치 못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사랑이랴? 다니엘의 믿음을 보라. 죽을 줄로 알고도 믿는 믿음이었다. 참새는 어디서나 언제나 짹짹거린다. 여기서는 짹이고, 저기서는 찍 이고, 이때는 쪽이고 저때는 쭉일 수 없다. 믿음도 이와 같다.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공사는 반드시 부실공사 이듯이 하루아침에 시험에 들거나 무너지는 믿음은 그 본질 자체가 믿음이 아니다. 믿음에 불순물을 섞은 것이다.
이제 우리의 대안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기본은 믿음이다. 누구를 믿는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다. 하나님을 믿기에 사람을 믿고, 하나님을 믿기에 목회자를 믿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교우들을 믿어야 한다. 기적을 믿거나 축복을 믿어서는 언젠가는 실망한다. 기적을 베푸시며 축복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믿어 드려야 한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 지금 우리는 돌아가서라도 기본으로 가야하고, 억울하고 분해도 다시 믿어야 한다.
진짜 믿음이 있다면 그럴 수는 없다. 영적인 믿음이 있다면 그렇게 살수가 없다. 관념적인 믿음이 아니라면 그렇게 원망할 수가 없다. 기복과 상관없는 믿음, 응답과 상관없는 믿음, 형통과 상관없는 믿음만 있다면, 우리는 실로 대단히 영향력 있는 성도가 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야성, 사도행전적인 능력 그것은 믿음뿐이다. 불신자 전도로 바빠야 하는데, 교인들 전도로 출혈이 심하니 어찌하리요. 하루 속히 교회 안에 불신자가 줄었으면 좋겠다.
믿음이 좋다. 믿음이 사람이 좋다.
믿음의 교회가 좋다.
당신은 교회를 믿습니까?
아니면 목회자를 믿습니까
아니면 사람을 믿습니까?
아니면 주님의 기적을 믿습니까?
주님이 주시는 축복에 매력을 믿습니까?
아니면 그리스도 그분을 믿습니까?
제대로 예수 믿고 천국 갑시다.
반듯하게 예수 믿고 변화 받읍시다.
마음으로 예수 믿어
주님의 안식에 들어갑시다.
"주여,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Am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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