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함께한 900일간의 소풍
▷ 세상구경이 소원인 어머니를 위해 자전거수레로 함께 세상나들이를 떠난
100세 노모와 70대 아들의 아름다운 동행 (왕일만, 유현민 지음)
▷70대 중반의 왕일만 할아버지는 연로하여 거둥이 불편한 100세의 노모가 창밖을 내다보며
바깥세상을 동경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합니다.
한평생 자식걱정 생계문제에 치여 고생만 하신 어머니에게 무얼 해드릴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는 서장(티베트)에 가보고 싶다는 어머니를 모시고 기나긴 여행길에 오릅니다.
가난하니 자동차를 살 수도, 기차를 탈 수도 없습니다.
모자의 자가용은 수레를 매단 세발자전거입니다.
△ 어머니, 우리 이제 정말 떠나볼까요?
△ 우주를 떠돈다 해도 어머니와 함께이니 걱정은 접기로 했다.
어머니야말로 이제껏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큰 집이 아니었던가.
이젠 내가 어머니에게 든든한 집이 되어드리면 되는 것이었다.
△ 쉬엄쉬엄 가자.
세상에 바뿔 것 없는데."
어머니는 늘 그랬다.
세상에 바쁠 것 없이 사신 분이었다.
씨앗이 움트고 자라
다시 씨앗을 맺기까지의 속도로,
그 자연의 속도가 진리라는 것을 믿으며 흙 속에서 평생을 살아오신 분이었다.
△ 새벽에 눈뜬 후 잠들기 전까지 낡아빠진 베옷을 걸친채 힘든 노역을 강요당하고,
평생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만 하면서 늙어온 내 어머니.
△ "어머니가 이렇게 노래를 잘하시는 줄 몰랐어요."
"젊었을 땐 더 잘했지."
"그런데 왜 저는 그동안 듣질 못했죠?"
"혼자 몰래 불렀지.
너무 슬픈 노래들이라서."
△ 어머니와 나는 이 지상에 세발의 바퀴 자극을 남기며 가고 있었다.
낮은 바람이 불어와 모래 위에 그림을 그리듯 그렇게 소리 없이
길 위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유랑과도 같이.
△어머니가 투정을 부릴 때마다 나는 웃음을 앓지 않으려고 애썼고.
늘 따뜻한 음식을 드리고 싶어 발걸음을 재촉했고,
화가 나서 손을 치켜드실 때는 내 널따란 등짝을 내드렸다.
△ 방송의 힘은 정말 대단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봤고
하룻밤 사이 우리는 세상의 화젯거리가 되어 있었다.
△ 그들은 우리의 자전거수레에 석양호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저물어가는 인생의 바다 끝자락을 항해하고 있는 어머니와 나의 소풍에
어울리는 썩 괜찮은 이름인 것 같았다.
△ 어머니를 다행히도 병원에 모셨다는 안도감과 온종일 먹지도,
쉬지도 못하고 내달린 피로가
갑자기 어마어마한 파도처럼 내 몸을 덮쳐왔다.
나 또한 칠십대 중반의 노인이었으니.
쓰러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 "이 안에 백 년 된 아주 귀한 인삼이 있습니다."
수레 안에서 어머니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창문을 열면서 어머니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외치섰다.
"내가 그 백 년 된 인삼이오!"
△ 바퀴를 굴려가며 바라보는 세상은 너무 아름다웠다.
이런 세상을 두고 곧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인간의 수명이라는 게 한스럽기까지 했다.
△어머니가 행복해하시는 모습이 내가 볼 수 있는 지상 최고의 행복이었고,
비록 한뎃잠을 자더라도 내게 가장 따뜻한 이불은 어머니의 행복이었으니,
그러니 나는 어머니가 행복해하시기만 한다면 세상 어디라도 좋았다.
△ 무얼 어떻게 하는 것이 효도인지 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는 것이 불효인지는 잘 압니다.
그저 불효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어머니를 대하고 있을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 "애비도 어렸을 땐 저렇게 귀여웠지."
"지금은요?"
"지금도 귀엽지."
△ "애비가 해주는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나는 어머니가 그렇게 음식을 맛있게 드실 때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다.
△"누가 만들었는지 신기하게도 참 잘 만들었다."
"조물주의 힘이 대단하지요?"
"조물주란 사람이 여길 다 만들었어?
그 양반 참 재주도 뛰어나구나."
△세상 사람들은 어머니와 나의 여행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행'이라고도 하고
'석양에 핀 모소' 라고도 했다.
그 어떤 수식어도 필요치 않았던 내 어깨에 그런 말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어머니는 돈이 싫으세요?"
"돈이 사람을 따라야지, 사람이 돈을 따라선 안돼.
알몸으로 왔으니까 알몸으로 가는게
당연한 이치인데 사람들은 그걸 모르는 것 같아."
△어머니는 아주 편안한 얼굴로 눈을 감으셨다.
마치 우리가 여행을 떠나던 날 아침의 환한 얼굴처럼.
떠난다는 것은 그렇게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여행을 떠났듯이 이 세상을 떠나가는 것이니.
△2003년 12월 30일 오후 3시,
어머니는 백세 살 생일을 이틀 남겨두고 조용히 떠나셨다.
동생과 나, 그리고 몇몇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형벌로써 감해지거나 벗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면,
나는 그때 이미 생을 포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고통을 다 참아낼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어머니께 드릴 수 있는
내 마지막 사랑이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를 한 줌 뿌릴 때마다 나는 기도했다.
"이젠 자유롭게 살아가십시오."
때론 흙 위에 눕고 때론 바람 속으로 들어서는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돌아보면 인생이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세상을 떠돌다가 목숨이 다하면,
어머니가 내게 말했듯
나도 자식에게 말할 것이다.
"내가 죽거든 나를 서장(티베트)에 뿌려다오,
어머니께 보내다오."
▷ 나는 이책을 읽고 가슴 저 끝 깊은 곳으로 부터 눈물이 흘렀다.
그래서 저자의 허락도 없이 삽화를 디카로 찍고 해설을 이곳으로
옭겨놓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잃어봤으면 하는 생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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